유년 시절의 추억(11) - 소풍에 관한 기억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5개 반까지 있었다.
한 반이 대략 6~70명씩 편성이 되었으니까 전교생을 다 합치면 무려 2,000명이 넘었다.
해마다 인구가 줄어 학교 유지조차 위태로운 요즘 환경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 학교 행사 중 아이들의 가슴을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봄, 가을에 실시되는 소풍과 가을에 열리는 운동회였다.
학교에서 자주 가는 소풍 장소는 대략 2~3군데로 정해져 있었다.
도림사, 양촌 솔밭 등등 ..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우리의 교통 수단은 언제나 도보였다.
소풍 가는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이면
아이스께끼, 달고나, 어묵, 도넛 등을 파는 먹거리 장수들이
학생들의 뒤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곤 했다.
변변한 나들이 도구 하나 없던 아이들은 보자기로 소풍 가방을 대신했다.
그 안에는 집에서 싼 김밥, 사이다, 삶은 계란 등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그마저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소풍에서는 보물찾기나 반별 장기자랑이 주류를 이루었다.
선생님들이 곳곳에 상품명을 적은 종지 쪽지를 숨겨 놓으면
그것을 찾아온 아이들에게 연필이나 공책 같은 학용품을 상품으로 주곤 했다.
장기자랑은 반별 대표가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씩 스포츠 중계방송 흉내를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접할 수 있는 문화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까닭에 특별히 두드러지는
장기를 선보이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소풍 날이면 학교에서 지정한 사진관
(새OO사진관)에서 촬영기사가 한 명 따라 나와 학생들의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주기도 했다.
내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라,
당시 또래 아이들이 갖고 있는 몇 장 안 되는 유년 시절의 사진들은
대부분 이런 기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