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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찔했던 그때

자유인。 2022. 11. 28. 00:00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두 번의 인생 위기가 있지 않을까.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연합고사를 거쳐 인근 대도시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었다.

다니던 학교에서는 2학년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여 수업을 하기에

1학년 과정을 마칠 무렵이면 담임 교사가 이를 구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문과와 이과 구분은 학생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차대한 일이었기에

당연히 본인들의 개인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우리 반 담임은 본인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당시는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라 공과대학이 각광을 받고 있던 때였다.

담임의 변은, 앞으로는 공대가 전망이 좋기 때문에 모두 이과를 지망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정할 테니 불만이 있는 사람은 교무실로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반 담임은 대단히 무서운 존재였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아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오직 한 학생만이 담임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모두 이과반으로 결정이 되었다.

나는 애초부터 문과 성향이었던지라 이과반 수업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 다른 이유로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도 계속해서 이과반 수업을 받아야 했다(그때는 규정상 전과轉科가 되지 않았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 문제는 비로소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가면 대학 진학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이고, 나의 미래 역시 엉키게 될 거라는 걱정이었다.

어느 일요일, 학교 도서관에 입시공부를 하러 왔던 길에 우연히 같은 반 친구에게

처음으로 이런 나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친구가 말했다.

내일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마침내 거기에서 용기를 얻어 다음날 선생님께 생각을 전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사들의 묵인 하에 혼자서 뒤늦은 문과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이후 나의 인생 행로도 적성을 살려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다.

책임지지도 못할 어린 학생들의 미래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본인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선생에게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원망의 감정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 같은 직업일지언정, 교사라는 자리는 여타 직업인과는 달라야 한다는 사실도

그의 사례를 보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이 무서워 감히 자신들의 생각을 내비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이과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 중에는 분명 나와 같은 문제에 봉착한 경우가 없지 않았을 텐데,

이후 그들의 인생 행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쉽게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던 나에게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준 동료 학생에게는 뒤늦게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학교 졸업 이후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