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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

자유인。 2022. 11. 28. 21:45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유복자이셨던 선친은 어떻게든 식구들을 굶겨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병행하면서 돈이 생길 때마다 땅(논)을 사 모으셨고,

유복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식들이 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환경까지는 만들어 주셨다.

당시 농촌에는기계화가 되지 않았던 때라 일손 하나가 아쉬웠다.

당연히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의 바쁜 일손을 거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내 아이들처럼 방과 후면 다른 신경 쓸 것 없이 친구들과 마냥 뛰어놀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한때는 농촌에서 태어난 나 자신의 운명을 적잖이 원망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식구들이 보는 공간에 올렸더니 처남댁이 그랬다.

'그런 성장 환경이 있었기에 오늘날 아주버님의 남다른 감성이 만들어지지 않았겠느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언제나 자연과 함께했던 농촌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감성이 가능했을까를.

미당 서정주 시인이 그랬던가.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이었노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키운 8할'은 어쩌면 농촌의 자연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때는 그렇게 불만이었던 성장 환경이었건만, 나이가 들고 보니

농촌에서 나고 자라게 해주신 부모님께 도리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