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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움 누가 알까?

자유인。 2023. 2. 3. 19:52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사회엔 '여자들은 가르칠 필요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형편이 어려운 까닭도 있었지만, 그런 사회적 인식이 먼저였다.

내가 살던 시골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자 아이들은 국민학교 졸업 후 곧바로 읍내 새마을공장이나 인근 도시의 공단으로 '돈 벌러' 떠났다.

그렇게 번 돈은 남동생이나 오빠를 비롯한 남자 형제들의 학비 밑천이 되었다.

우리 세대가 그러했거늘 부모님 세대는 오죽했을까.

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쓴 문해학교(文解學校)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칠곡 가시나들'이란 제목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책이다.

문해학교란 글을 깨우치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다.

주로 시골 마을 70~9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모든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2017년 현재 우리나라 문맹자는 전국적으로 31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의 어머니 세대는 국민학교조차 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고 싶어도 보내지를 않았다. '네가 없으면 살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떼를 쓰면 부모는 매몰차게 딸의 뺨을 후려치며 일방적으로 의지를 꺾어버리곤 했다.

'여자가 배워서 뭐 하느냐'며.

그렇게 '까막눈'으로 보낸 세월이 한평생.

노선 번호를 읽지 못해 엉뚱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헤매야 했던 일,

참기름과 콩기름은 냄새로만 구별해야 했고, 돈 역시 모양으로 구분했다.

글자를 모르니 은행 한 번 갈 수 없었고, 편지를 쓸 수 없으니 우체국 한 번 갈 수 없었다.

괜히 무시당할까 봐 누구에게 함부로 묻지도 못했다.

손주가 공부하다 말고 모르는 글자가 있다며 물을 때면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제대로 안 듣고 뭐 했냐'며 도리어 죄 없는 손주를

나무라며 자신의 말 못할 비밀을 감춰야 했던 일 등등.

그런 할머니들이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을 직접 쓰고,

거리의 간판을 읽게 되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편지도 쓴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이제는 혼자 밖에 나가도 무서울 게 없노라고.

평생 자식들에게조차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 살아야 했던

그 한(恨)을, 그 설움을 누가 알까?

그런 어머니들이 우리를 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