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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거라

자유인。 2023. 2. 14. 23:04

 

작년 11월에 태어난 외손주가 백일을 맞았다.

오랜만에 사돈댁과 만나 양가 손주의 건강을 기원했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자라준 손주를 볼 때마다 고마울 따름이다.

본래 백일은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 아기들이 태어난 후

이 기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에,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거란 기대와 바람에서 축하의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의 출산을 앞두고는 마지막 순간까지 통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뜻하지 않은 며느리의 아픔이 있고 난 뒤라 더더욱 그랬다.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제발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사돈댁도 그 소식을 듣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적잖이 망설였다고 한다.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게 도리인지, 당분간 지켜보는 것이 도리인지 가늠이 쉽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런 마음을 가져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손주가 태어난 후 집안의 모든 관심은 아기에게로 향하고 있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아기는 태어나면 한동안 색깔 구분을 못한다고 했는데

이제 조금씩 식별이 되는지 장난감을 흔들어 주면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 소리'도 내기 시작했고, 종종 웃음 애교도 발사하며 어른들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키는 마법을 발휘하기도 한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만 해도 육아에 관한 한 무지했던 것 같다.

아버지로서 무심한 부분이 적지 않았고, 아내가 알아서 잘 키우겠지, 라는 생각이 앞서 있었다.

손주가 태어나고 보니 그게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자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낳으면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의 헌신적인 관심과 사랑과 희생을 통해 온전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음에도 많이 부족했던 점,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뒤늦은 반성문을 쓴다.

요즘 세대는 기성 세대가 소홀했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잘 수행해 나가고 있다.

어른이랍시고, 부모랍시고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지혜롭고 현명하다.

백일을 무사히 넘긴 외손주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자라,

이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주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