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과 직업
나의 학창 시절에는 대학교에 진학할 때
자신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전공을 택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신의 예비고사나 학력고사 성적에 맞춰 학과를 택하곤 했었다.
본인 스스로 어떤 적성이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입시 정책이 가볍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담임 교사들의 입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능력은 대개 명문대 몇 명, 서울 소재 대학 몇 명, 혹은 4년제 몇 명을 보냈느냐로 평가되다 보니,
어디든 한 명이라도 더 진학시키는 것이 본인들에게는 더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직업을 택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주변을 보면 전공에 맞춰 직업을 택한 경우보다,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의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택한 경우가 더 많았다.
철학과를 나와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회계학과를 나와 무역업에 종사하거나,
성악과를 나온 사람이 인쇄업에 종사하거나,
법학과를 나온 사람이 물류업에 종사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학교 졸업 후 첫발을 내딛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미래의 직업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돌아보면 입학과 동시에 가야 할 길이 분명하게
정해지는 학과는 의과대학이나 수의학과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적성보다는 성적에 기반한 부모의 욕심이 우선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도에 탈락하는 사례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률적인 면에서 보면 다른 학과보다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비교적 덜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오직 공부, 그것도 입시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 정책 위주다 보니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는 통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공부만 잘하면 '착한 학생'이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 학생' 혹은 '불량 학생'이란 잘못된 딱지를 붙이곤 한다.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인성 하나는 더없이 좋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공부도 잘하고 인성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저마다의 타고난 능력이 다른데 획일적인 잣대만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오직 공부 하나에만 매달렸던 아이들보다는
공부에는 별다른 재미를 못 붙여 조금은 말썽도 피우고, 종종 문제도 일으키곤 했던
아이들이 인생은 오히려 더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