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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했던 선생님

자유인。 2023. 3. 31. 21:33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를 한 편 더 이어간다.

어린 아이들이라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도 시간의 문제일 뿐, 아이들은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나처럼.

초등학교 시절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경우,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이 오직 자신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자 했던 경우,

교육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루하루를 형식적으로 임했던 경우.

 

세월이 흘러 생각나는 선생님들은 어떤 형태로든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었거나,

아이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대했거나,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던 분들이 주로 떠오른다.

 

그 중 3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최O배 선생님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은 계속되는 수업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매일 한 토막씩 소설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는 무엇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지은 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인 '장발장' 이야기였다.

'레 미제라블'은 주인공인 장발장이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간의 감옥 생활을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매일 조금씩 나누어 들려주셨다.

 

어찌나 감칠맛 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풀어주시는지

아이들은 그 시간만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망울이 또랑또랑했었다.

그러다가 한창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오늘은 여기까지.. 나머진 다음 시간에 ..'

라며 그날 계획한 분량을 끝마치셨다. 그러면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다음 시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곤 했었다.

 

선생님은 드물게 아이들의 심리를 잘 헤아리시는 분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또 적절한 타이밍에 끊으시며 아이들과의 '밀땅'을 즐길 줄도 아셨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옛날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 선생님만큼

재미있게 풀어준 경우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3학년이면 한창 장난이 심한 개구쟁이였을 나이임에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없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교사로서 참 훌륭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내 나이가 벌써 이만큼이나 됐으니... 어쩌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