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주말이면 한 번씩 종이 신문을 구입한다.
평일 신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다.
이번 주말판에는 국내 굴지의 대형 종합병원장을 역임한 분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고향인 지방의 보건소장을 지낸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보건소장 모집 공고에 그가 이력서를 내자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감히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시골 면장이나 동네 이장 모집에 지원한 격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은 두 가지를 줄일 수 없다고 한다.
넓은 집에 살다가 좁은 집으로 이사 가는 일, 큰 차를 타다가 작은 차를 타는 일이 그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닌, 정상적인 경우에 한해서다.
거기에 지위나 명예도 추가로 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던 이가 한순간에 그것을 내려놓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은퇴 후에도 '왕년의 영화'에만 젖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과거의 지위에 걸맞은
자리만 추구하다 보니 기회를 쉽게 만나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아무리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도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냥 '리즈 시절'에만 취해 있는 인생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현직 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을 하고 있다.
과거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내가 원하던 일이었고,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나 스스로 택한 것이기에
하루하루 더없이 만족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을 때는 '무엇이 될 것인가'에 역점을 두었다면,
나이가 들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보다 우선적인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다.
인상 깊었던 그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오늘 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람이 밥을 하루 세 끼 먹지 않나. 나이 들면 그 세 끼도 다 못 먹는다.
내가 돈을 크게 벌어서 뭐하겠나.
나는 수십 억원씩 버는 삼성 사장들과 만날 때 '월급은 적어도 당신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보건소 의사로 지낼 때 참 행복하고 감사했다."
<출처 : 조선일보 - 삼성서울병원장을 지낸 이종철 박사 인터뷰 기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