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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다 죽을 거예요?

자유인。 2023. 5. 18. 14:34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어느 노부부 이야기에 눈길이 멈췄다.

바닷가가 보이는 어느 마을.

여든이 가까운 노부부는 적지 않은 땅에 농사도 짓고 나무도 가꾸며 살고 있었다.

척박하기만 했던 황무지를 일구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없던 살림에서 벗어나 이제는 먹고 살 만했지만, 날마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한평생 일에 지친 부인이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은 평생 이렇게 일만 하다 죽을 거예요?

나는 이제 일 좀 그만하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남편이 답한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계속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까운 땅이 노는데?"

우리 세대는 노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 했다.

우리가 그러할진대 우리보다 더 고달팠을 부모 세대는 더 말해 무엇 하랴.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따로 없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덤벼야 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식구들 입에 풀칠조차 하기 버거웠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식 세대 역시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보고 배울 수밖에 없었다.

문화는 경제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는 나무와 같다.

당장 오늘의 한끼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문화란 배부른 자들의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앞서 예시한 노부인의 경우처럼, 어느 정도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면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 건 모든 이의 바람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언제까지 일만 하다 간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내 친구들은 대부분 퇴직을 했거나 앞두고 있다.

운이 좋은 친구들은 좀 더 길게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 역시 앞으로 몇 년일 뿐이다.

퇴직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무료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여전히 어려운 이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 제법 여유가 있음에도 일을 계속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후자의 경우 정말로 일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일을 하지 않으면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한평생 여가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내가 남들처럼 판에 박힌 삶은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40대 초반 무렵이었다.

적어도 부모 세대와 같은 삶으로부터는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매일처럼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며 이어가고 있는 블로그 활동도 그런 생각의 일환인지 모른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은 7(자유)대 3(일) 또는 6대 4의 비율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퇴직을 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건사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다행히 아이들이 제때 짝들을 찾아 각자의 가정을 꾸린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들어 내가 바라던 형태의 적당한 일거리도 찾았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지시를 떠나, 자유 의지에 따른 삶을 살 수 있을 때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백 만원이란 돈은 내 주머니의 천 원만 못하다.

언제까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정작 중요한 내 삶은 없어진다.

어떤 형태의 삶을 지향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 모두가 꿈꾸는 행복의 파랑새는 결국 저마다의 손 안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