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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스승

자유인。 2023. 5. 22. 22:31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외손주를 보러 간다.

혼자서 육아에 매달려야 하는 딸의 고단함을 얼마라도 덜어주기 위함이다.

물론 아기 엄마의 지원 요청이 있을 때에 한해서다.

딱히 약속한 바는 없지만 우리가 여의치 않을 때면 사돈댁에서,

사돈댁이 여의치 않을 때면 우리 내외가 투입되는 식이다.

나날이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는 손주를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 유모차에 손주를 태우고 가까운 양재천으로 산책을 나간다.

이날도 산책길 벤치에 앉아 손주의 재롱을 감상하고 있었다.

뒤늦게 우리가 앉은 맞은편 벤치로 어느 노부부가 들어섰다.

아기를 보고는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넨다.

낯선 이들과의 말문을 틀 때 아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매개체가 되곤 한다.

아기가 예쁘고 총명하게 생겼다는 인사로부터 시작된 그분들과의 대화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올해 87세가 되었다는 바깥분은 한눈에 엘리트 분위기가 느껴졌다.

명문대 화학과 출신으로 오래 전 퇴직을 했으며, 근처에 살면서 종종 양재천 산책을 즐긴다고 했다.

본인들도 오랫동안 자식을 대신해 손주를 키웠다며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흔히들 어른들은 아기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하지만, 실제로는 다 듣고 있노라고.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해도, 지속적으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아기의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라고.

선대로부터 배운 지혜라며, 비상시에 활용할 수 있는 긴급 처방법도 함께 알려주었다.

이윽고 헤어질 시간이 되어 고맙다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더니,

아기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란다며 축원의 기도까지 해주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길 위에서 뜻하지 않은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