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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가장 맛있을 때

자유인。 2023. 6. 3. 18:59

 
우리 집은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신다.
돌아가신 선친은 물론, 형제들도 술을 한잔도 아닌 반잔 정도만 마셔도 곧바로 취침 상태에 들어간다.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몸을 타고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진지한 편이다.
진지하다는 건 달리 표현하면 재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 너무 교과서적인 얘기만 계속하다 보면 피곤할 때가 많다.
때로는 웃는 시간도 필요하고, 유머도 함께 어우러질 때 사람 만나는 맛을 느낄 수가 있는데
내내 학술 토론 같은 분위기만 이어지면 쉬이 지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나만 예외다. 돌연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 마시는 걸 자랑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아예 못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마시는 게 사회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의사들은 술이 몸에 해롭다며 가급적 안 마시는 게 좋다지만,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비단 술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도 어느 것 하나 농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없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먹지 않고 살아야겠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지나치면 좋지 않다' 정도로만 해석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는 주로 소주 위주로 마시는 편이었다.
막걸리와 맥주는 쉬이 배가 불러오기도 하고 몸에서 잘 받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무게 중심이 맥주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이전과 달리 흡수력도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여태껏 술을 가장 맛있게 마셨던 경험은 외국에서였다.
2000년대 초반 어느 해 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업무차 출장을 갔을 때였다.
하루 종일 전시장에 선 채로 각국의 손님들을 맞이하고 상담을 하고 나면 몸이 파김치가 되곤 했다.
그럴 때 일과가 끝나고 난 저녁에 동료들과 생맥주 한잔을 하고 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라는 걸 난생처음으로 느꼈던 때였다.

지금 역시도 맥주가 가장 맛있는 때는 몸이 피곤할 때나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뒤에 마시면 비로소 제대로 된 맥주의 진수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럴 때 흔히 말하는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셨던 황홀한 맥주의 맛을 그 이후

어디에서도 다시 경험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