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대세였지만
한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등산복이 대세를 이루던 때가 있었다.
본래는 산행이나 캠핑을 위한 용도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들이 복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국내 여행은 물론, 외국 여행을 가도 너 나 할 것 없이 등산복 일색이어서 옷차림만으로도 금세 한국인을 식별할 정도였다.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까지 특정 브랜드 등산복이 마치 교복인 양 유행을 타기도 했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창 산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는 철마다 등산복을 사기도 했었고,
외출할 때면 그것이 나의 주된 옷차림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등산복을 입지 않게 되었다.
산에 가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등산복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비상용으로 한 벌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내다 버렸다.
그조차 마지막으로 입은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의 패션(옷차림)은 엉망이었다.
딱히 패션이랄 것도 없이 아예 개념조차 없었다.
나에게 있어 옷이란 그저 신체의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용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 옷을 사면 해질 때까지 입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옷을 사는 일은 주로 아내에게만 의존했던 자신이 스스로 매장에 나가 구매를 할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이런 상의에는 저런 하의를, 이런 색깔에는 저런 색깔로 배색을 하면 좋겠다는 나름대로의 패션 철학도 갖게 되었다.
너무 오래 입었거나 유행이 지난 옷은 미련 없이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성장기의 환경이 한 사람의 인생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곤 한다.
스스로 그것을 바꾸거나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굳어진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굳이 다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한때의 나 스스로가 그랬다.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았던 노인들이 뒤늦게 문해학교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버스 노선 번호을 읽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이 비단 노인들에게만 국한된 얘기일까.
살아 있는 동안 내 생각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가미하다 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패션에 관한 나의 생각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