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모니카
길을 걷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퇴근을 앞둔 무렵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여민 채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다.
둘러보니 신문과 잡화를 파는 근처 가판대에서 나는 듯했다.
역시 ...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이 가게 안에 홀로 선 채로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었다.
대략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쯤 되었을까.
추측컨대, 하루 종일 찾는 이 없는 가게를 우두커니 지키고 있자니
무료함을 달래길 없어 나름대로 택한 방법이거나(요즘 이런 가판대에서 물건을 사는 손님을 통 보지 못했다),
최근 한창 하모니카를 배우는 중이어서 혼자서 연습을 하는 과정일 수도.
태어나서 내가 맨 처음 만난 악기가 하모니카였다.
유일하게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 또한 하모니카였다(기타를 배우기 전까지는).
어떤 경로로 그것을 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때가 중학교 초년생쯤이었으니 역사가 꽤 오래된 셈이다.
훗날 많은 세월이 흘러 같은 반이었던 동기생 한 명이 당시 하모니카를 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고 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조차 잊고 있던 기억이니까.
순전히 독학으로 익힌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가까이하다 보니 계명을
몰라도 멜로디만 들으면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요즘 세대는 대부분 악기 하나쯤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지만,
생존만이 최대의 화두였던 나의 시대에는 언감생심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공부 이외 한눈을 팔 경우 어른들 눈에는 '싹수가 노란 아이'로 비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고향 출신 동년배 중에서 악기 하나를 제대로 다루는
이는 극히 드물다. 다만, 대학 다닐 때 만난 서울 친구들 중에는 기타를 칠 줄 아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던 걸 보면 지방과는 다소 차이가 존재했던 것 같다.
가판대 아주머니의 하모니카 소리가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배움을 통해
얻는 기쁨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악기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한평생 꿈으로만 여겼던 기타에 도전했던 때가 오십대 중반이었다.
실행에 옮기기까지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만약 나이를 핑계로 생각으로만 머물렀다면 지금도 여전히 이루지 못한
바람에 대한 회한이 적잖이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할 때면 프로처럼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마음이 앞서면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조금 못하면 어떠랴. 어차피 '기타의 신'이라고 불리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되지 못할 바에야 나대로의 삶을 즐기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