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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卒婚)이라는 말

자유인。 2024. 2. 2. 04:02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끊임없이 생성, 변천, 소멸을 거듭한다.

한때는 흔한 말이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던 말이었는데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표준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말로 교체되기도 한다.

근래 들어 새로 생긴 말 중에 졸혼(卒婚)이라는 단어가 있다.

직역하면 마칠 졸(卒), 혼인할 혼(婚) 자를 써서 혼인관계를 마친다는 뜻이다.

본래 없던 말이었는데,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 卒婚のススメ>

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 이래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신조어다.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각자의

인생을 자유롭게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혼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얼마 전 방송에서 한 유명 탤런트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는 오래전 공개적으로 졸혼을 선언한 바 있다.

10년간 절연한 딸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내용이 꾸며졌다.

자세한 내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딸의 말과 표정 곳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짙은 원망이 서려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이나 배려가 전혀 없이 무엇이든 일방적이었노라고 했다.

과도할 정도로 술을 좋아해 취하고 나면 제어가 안 되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날이 많았노라고.

그가 졸혼을 선택한 건 배우자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 듯했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터라

본인으로선 다시 과거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법적인 정리만 하지 않았을 뿐 이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졸혼이란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자끼리 서로 건설적인

합의하에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선택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부부관계의 악화로 인한 이혼이나 별거의 또 다른 말이란 것을.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향하고 만다.

가정 또한 가족이란 관계를 떠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함께할 때

비로소 화목도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