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지난 시대의 전설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교사라고 해서 모두가 올바른 인격의 소유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의 성장기에는 학부모가 학교나 교사에게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선생님 처분에 맡길 테니
제 자식 어떻게든 사람 되게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디서나 접하는 일상사가 되고 있다.
내 친구 부인은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정년을 맞이하려면 몇 년이 더 남았지만 조만간 퇴직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더 이상 학부모들과의 갈등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툭하면 아동학대 금지법을 들먹이며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려
드니 교단에 선 입장에서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문과를 전공했던 나는 대학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하여 교원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활용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그 과정을 이수한 것은
딱히 교사가 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기회가 있을 때 취득해 놓으면
언젠가는 활용할 일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서울의 어느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었다.
이는 당시 교직과목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1학년을 맡았었는데, 분위기가 산만하기로 소문난 반이었다.
동료 교생들조차 수업을 다녀올 때면 감당이 안 되는 그 반 아이들을 언급하곤 했다.
그저 좋기만 한 담임으로 인해 학급 분위기가 이미 그렇게 형성된 터라
실습 나온 교생의 입장에서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외에도 실습 과정을 통해 이런저런 교육 현장을 보고 접하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교사로서의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질풍노도기를 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지식이야
어떻게든 전달할 수 있겠지만, 인격 수양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단에
선다는 건 양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고, 그런 경험들이 시나브로 쌓이면서 '만약 내게 그때와 같은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이제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 부인의 사례를 접하면서 또다시 생각이 달라졌다.
다른 건 몰라도 피할 수 없는 학부모들과의 갈등은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사소한 문제 하나만 생겨도 학교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급 기관으로의 지속적인 민원을 통해
일파만파로 번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최고 인기 학과 중 하나였던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의 경쟁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말라던 시절이 있었건만, 흘러간 지난 시대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