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나라꽃의 의미

자유인。 2025. 4. 10. 04:57

 

 

꽃이 지천이다. 사계절 중 봄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자연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들이나 2, 30대 젊은이들이 자연을 보며 감탄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은 대개 마흔이 넘어야 나타나는 듯하다.

 

꽃들도 저마다 피는 순서가 있어 지금은 벚꽃과 목련, 개나리가 대세다. 그중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은 단연 벚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벚꽃이 피는 정확한 시점을 맞추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 시기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 미리 개화 시기를 예상해 축제 일정을 잡아두었지만, 막상 당일이 되었는데도 꽃이 피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 행사를 준비한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이 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만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온통 벚꽃 축제 열기에 빠져드는 현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벚꽃은 당연히 일본의 국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일본이라는 나라는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 왜 그들의 국화인 벚꽃에는 그토록 열광할까 싶어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벚꽃은 종류가 워낙 다양해 어디가 원산지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중에는 한국이 원산지인 품종도 있고, 일본이 원산지인 것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의 국가가 원산지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 정부에서는 벚꽃을 자신들의 나라꽃으로 지정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벚꽃에 대한 나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꽃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에 관해서도 몇 자 적어보자. 우리의 애국가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그 대목을 접할 때마다 의구심이 들었다. 벚꽃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무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무궁화는 애국가 속에서만 존재하는 꽃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무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하나는 집 바로 앞 중학교 울타리였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 다녀온 청와대 인근 공원에서였다. 후자의 경우 과거 안가安家(특수 정보기관 등에서 비밀 유지를 위해 이용하는 집)가 있던 자리를 허물고 만든 공원인데, 거기에는 나라꽃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대로 모양새를 갖춘 무궁화 화단이 조성되어 있어 그나마 체면이 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누군가에게 어떤 이름이나 직책을 부여한다는 건 모종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런 기대감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우가 뒤따라야 한다. 말 못 하는 식물이라고 다를까. 정부 차원에서 나라꽃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으면 그에 따른 예우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예우란 다름 아닌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혹시 아는가. 지금처럼 홀대가 계속되면, 무궁화 나라에서 더 이상 나라꽃으로서의 역할을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하고 초야로 돌아가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