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미용실에서

자유인。 2025. 6. 17. 05:00

 

 

우리말에는 일상적으로 쓰고는 있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표현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머리를 자른다'는 말이다. 사람의 머리를 자르다니,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다. 본래는 '머리를 깎는다' 또는 '머리카락을 자른다'라고 해야 하지만, 관례상 그렇게 쓰고 있다.

 

3주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러 간다. 그 시점이 되면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안다. 왠지 기분이 갑갑해지면서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그때 거울을 보면 어김없이 '아 ~ 또 머리 손볼 때가 되었구나' 하는 걸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이번에는 2주밖에 안 지났는데도 마치 3주가 된 듯 불안했다. 평소보다 조금 길게 잘랐던 까닭이다. 이럴 때면 하루 이틀 고민하다가 어느새 미용실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연배 전후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왔다. 남성 전용 미용실에 여성이 찾아오는 경우는 대개 어머니가 아이를 동반할 때뿐인데, 다소 예외적인 경우였다. 들어서자마자 부인인 듯한 여성이 대뜸 미용사를 보며 볼멘소리를 한다. 남편이 여기서 머리를 잘랐는데 왜 이리 모양이 비뚤비뚤하냐는 것이었다. 남편인 듯한 남자는 그 옆에서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서 있었다.

 

미용사가 말했다. 모자를 썼거나 머리가 덜 마른 상태에서 자르면 그런 경우가 있노라고. 손볼 곳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나 역시 머리를 자른 뒤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다시 손을 봐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미용사들 또한 친절히 응대해 준다.

 

내가 주목한 건 그 부부의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이미 남자 혼자서 머리를 자르러 왔었고, 불만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미용사에게 말을 하면 쉽게 해결이 되는 일임에도, 어린아이도 아닌 세상을 살 만큼 산 남자가 간단한 머리 문제 하나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 부인을 보호자 삼아 대동한 모습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남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살펴봤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짐작건대 어느 날 남편이 머리를 자르고 왔는데 부인이 보기에 '엉망으로 잘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시 가서 손을 보고 오라 했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미안하게 그 말을 어떻게 하냐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부인이 앞장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남들의 시선이 몰리는 밖에서까지 굳이 저래야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부간에도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저마다의 영역이 존재하거늘, 일방의 생각만으로 그것을 함부로 무너뜨리는 순간 결국 자신들의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