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성북동 나들이 본문
<금왕돈가스 성북 본점>
한창때는 모임을 참 많이도 만들었다. 대부분 내가 주동자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친구는 '창당의 달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일원으로 참여는 하지만, 나서서 궂은 일까지 도맡는 건 꺼리는 편인데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과거지사일 뿐,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일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 모임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몇 개 되지 않는다.
구성원 간 이해 충돌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선호하는 모임 인원은 대략 서너 명 정도이다.
그보다 많으면 분위기만 떠다닐 뿐 제대로 대화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을 40년도 훨씬 넘게 했지만 아직도 생소한 곳이 더 많다.
오랜 세월 생업의 터전이었던 강남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익숙한 편이고, 그에 반해
성북구, 도봉구, 강북구 같은 한강 이북은 상대적으로 낯설다.
옛 친구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탐방을 하고 있다.
이 역시 내가 최근에 주동해서 만든 조촐한 평일 점심 모임이다.
성장기부터 지금껏 함께한 친구들이라 무슨 얘길 해도 부담이 없어 좋다.
이번에 간 곳은 성북동이었다.
내가 성북동에 관한 얘기를 들은 건 학교 때 배운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거기에 '채석장 돌 깨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한때는
동네 어딘가에 채석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성대역에서 만나 길상사를 비롯한 성북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였다.
여태껏 말로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성북동이 어딘지조차 몰랐다.
그 동안 들은 바로 성북동은 예로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부촌(富村)의 상징이었다.
흔히들 평창동, 구기동을 알고 있지만 그보다 역사가 깊은 동네였다.
직접 눈으로 보니 듣던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저택들이 즐비했다.
서울에서 웬만한 동네는 거의 다 개발의 바람이 불었는데,
이곳은 고도제한이 있는 듯 야트막한 형태의 저택들이 고풍스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온통 아파트 일색인 여느 지역과는 달리 유럽의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어딘가 청와대 옆 내자동과 비슷한 분위기도 느껴졌다.
반대편 언덕배기에는 어려운 이들의 거처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가게며, 골목이며, 집들이 한데 잘 어우러진 동네 풍경이
마치 거대한 디지털 시대의 한가운데 떠 있는 아날로그 박물관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성북동 산책길이었다.
나중에 분위기 좋은 날 조용히 카메라 들고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