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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전날 일기예보에 눈이 많이 내릴 거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자동차 지붕이 덮일 정도로 많이 내려 있었다. 바닥이 질퍽거리는 걸 보면 비까지 섞여 내린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과를 수행하는 도중에는 거센 눈보라가 작업장 안으로 들이칠 만큼 기세는 강해졌다. 불현듯 군인 시절 자주 불렀던 '용사의 다짐'이란 군가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눈보라 몰아치는 참호 속에서 ~ 한 목숨 바칠 것을 다짐했노라 ~ '. 퇴근할 무렵이 되니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눈송이는 점점 더 굵어졌다. 11월에 눈이 내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첫눈치고는 폭설에 가까운 양이었다. 단풍잎이 채 지기도 전에 눈이 내리니 마치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
해마다 이맘때면 단풍을 즐기기 위해 설악산으로, 치악산으로, 오대산으로, 내장산으로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해인가는 설악산 단풍을 보기 위한 인파가 얼마나 많이 몰렸던지 등산로 정체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렇게 가면서도 현지에서 기대했던 단풍을 보고 오기는커녕 제대로 물도 들지 않은 채 말라 버린 나뭇잎을 보고는 한숨을 내쉴 때가 더 많았다.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런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다. 적지 않은 수업료를 지불한 덕분에 꼭 멀리 가야만 단풍을 볼 수 있다는 착각에서 과감히 탈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단풍을 보러 멀리 가지 않는다. 나름대로 단풍 즐기는 방법을 터득한 데다, 마음만 먹으면 살고 있는 동네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
많은 이들이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나 나라는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외지나 외국만을 열심히 더듬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살고 있을 뿐, 누군가 자신이 사는 동네나 나라에 관해 설명하라고 하면 마땅히 설명할 게 없다. 관심이 없으니 특별히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네 적지 않은 이웃들의 현실이다. 나라고 예외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자유로워진 요즘 평소 궁금하거나 못 가 본 장소를 뒤늦게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차를 타고 경수산업도로를 숱하게 오가면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 정상 부근 절인 듯 보이는 한 건물의 정체가 늘 궁금했다. 이따금씩 길가 계단 진입로를 통해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분명 길은 어디로든 나있는 것 같았고, 언제쯤 직..
경기도 군포는 내가 결혼 후 10년 가까이를 보낸 도시이다.그때의 행정 주소는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이었는데, 나중에 군포라는 별도의 도시로 독립했다.그곳에서 아이들도 태어났고, 내가 살던 곳 바로 너머에서 산본 신도시가터를 닦고 하나의 도시를 완성하기까지의 모든 과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지켜보았다.이후, 그때와는 풍경이나 규모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나와 내 가족이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어디든 물이 있는 곳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바로 음식점과 카페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실내에서 물을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그런 풍경을 직접적으로 내다볼 수는 없어도근처에 물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심리적인 풍요로움을 향유할 수 있..
정치에 관심이 있건 그렇지 않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이상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제정하는 주체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유권자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서울 여의도에 있다. 그동안 주변을 맴돌기만 했을 뿐, 제대로 내부를 살펴본 적은 없었다. 지인들과의 모임을 앞두고 답사를 겸해 난생처음으로 국회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완공된 것이 1975년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셈이다. 2023년 기준 직원 수는 3,481명, 국회의원 300명까지 포함하면 한 해 국회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만 해도 엄청난 규모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이 제22대 국회 개원일이라 개원식을 마친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