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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대접한답시고 라면을 내놓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라면은 지금처럼 출출할 때 먹는 간식 개념이 아니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맛본 라면의 맛은 황홀했다. 국물만 한 모금 들이켜도 소고깃국을 먹은 듯 든든했고, 얼굴에는 금세 기름이 돌았다. 이후 먹은 어떤 라면도 그때의 맛을 능가하지 못했다. 형편이 어렵던 그 시절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고, 뭐든 먹을 것만 있으면 그 자체로 감지덕지했다. 언제부터인가 밀가루 음식이 싫어졌다. 근래 들어 생긴 변화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혀에서 전해지는 텁텁한 느낌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그토록 나를 전율케 했던 라면은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
명절을 앞두고 지인들끼리 만났다. 일행 중 한 명이 어떻게 하면 노후를 보다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 조언을 좀 해달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다들 비슷한 고민에 봉착하는 모양이다. 그건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저마다 취향이나 관심 분야가 다르니, 누가 조언을 한들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생업 외에는 한 번도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마음이 급해진다. 이쪽저쪽 문을 두드려보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그제야 실감한다. 들은 얘기다. 서울에 주거지를 가진 할머니가 있었다. 같이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나면 종일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런 날이 계속해..
길을 걷다 보니 한 아파트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협의 없는 일방 추진 상가제척 요구한다'.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재건축을 추진하는 중인 듯하다. 나의 눈길이 머문 건 그중 '제척'이라는 단어였다. 일상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라 사전을 찾아보았다. '법률이나 규정에서 정한 사유가 있을 때 해당 인물이 특정 사건이나 직무에서 자동적으로 배제되는 제도나 행위'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해당 인물을 관련 대상에서 빼 달라는 뜻이다. 저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이런 용어를 접할 때마다 적잖이 불만이다. 정치권이나 법조계에서 특히 심하다. 사보임, 내홍, 제척, 항소, 상고 등등. 이런 말들이 처음 등장한 건 멀게는 중국 한나라 때(내홍)부터, 가까이는 일제..
한가위 추석이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만 해도 교통 정체와는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길었다. 지금이야 두 시간 남짓이면(도로만 막히지 않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무려 13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적도 있었다. 비행기로 우리나라에서 미국 동부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이라면 중도에서 차를 돌렸을 테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조차 할 줄 몰랐다. 부모님 떠나신 뒤로 고향 내려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 끔찍했던 도로 정체의 경험 역시 이제는 한낱 추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명절이 되어도 예전 같은 분위기조차 실감하기 어렵다. 연휴를 이용해 성묘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걸 보면, 이제 명절은 조상을 모신다는 개념보다는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더 짙어진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