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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현직 시절 동료 중 한 명은 자기 생각이 분명치 않았다. 이 사람이 얘기하면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 사람이 얘기하면 어느새 또 저쪽으로 쏠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상사가 누군가를 싫어하면 그도 싫어했고, 상사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도 따라서 좋아했다. 영화 를(을) 보고 왔다. 영화관을 찾는 게 연중행사에 가까운 내가 일부러 시간을 낸 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무릇 어떤 대상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본인만의 일관된 논리가 필요하다. 그에 합당한 이유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그러니 나도 그렇다'라는 건 몸은 내 몸인데 남의 머리로 인생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든 주변 분위기에 쉬이 휩쓸릴 수 ..
음식에 제철 음식이 있듯, 풍경에도 제철 풍경이 있게 마련이다. 눈 내린 겨울 풍경을 꽃 피는 봄에 올리거나, 철지난 여름 풍경을 낙엽 진 늦가을에 올리면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을 때맞춰 즐기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바로 가까이 살지 않는 한 매일처럼 길을 나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느낌에 의존하는 수밖에. 그렇게 찾은 10월의 들녘. 나의 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을걷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나마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다. 이틀 전(10/10, 토) 풍경이다.
나는 소리에 예민한 편이다. 책 읽을 때 주위에서 조그만 잡음만 있어도 집중이 어렵다. 안정된 독서를 위해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환경을 경험해 보았다. 그중 가장 적합한 장소는 도서관 아니면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되도록 조용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대화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눈치를 주지 않게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혹은 음식점에서 우리는 대체로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음악도 혼자서만 즐기면 될 텐데, 본인 좋으면 그만인 양 한껏 데시벨을 높인다. 통화 역시 자기네 안방인 듯 조심성이 없다. 이런 모습은 노년층일수록 특히 심하다. 공과 사의 구분이 없다. 특정 세대를 욕하자는 게 아니다. 어른으로서 대접받으려면 나이를 앞세우기 ..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대접한답시고 라면을 내놓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라면은 지금처럼 출출할 때 먹는 간식 개념이 아니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맛본 라면의 맛은 황홀했다. 국물만 한 모금 들이켜도 소고깃국을 먹은 듯 든든했고, 얼굴에는 금세 기름이 돌았다. 이후 먹은 어떤 라면도 그때의 맛을 능가하지 못했다. 형편이 어렵던 그 시절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고, 뭐든 먹을 것만 있으면 그 자체로 감지덕지했다. 언제부터인가 밀가루 음식이 싫어졌다. 근래 들어 생긴 변화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혀에서 전해지는 텁텁한 느낌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그토록 나를 전율케 했던 라면은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