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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소방차가 두 대나 출동하고, 중무장한 소방관들이 어딘가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앰뷸런스와 들것도 보이고 경찰차까지 출동해 있었다. 어디 불이 났나 싶어 아무리 둘러봐도 연기는 나지 않고, 분위기로 보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출동했던 소방차와 경찰차가 철수하는 걸 보면 사태는 어느 정도 수습이 된 듯했다. 나중에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사연은 이러했다. 한 주민이 관리소로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관계자는 즉시 119에 전화를 했고,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했다(소방차가 출동하면 경찰차도 함께 출동해야 하는 규정..

처가 식구들과 강원도 홍천에 다녀왔다. 꽉 막힌 도시에서만 살다가 모처럼 자연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교외로 나가면, 그 자체만으로 치유의 효과는 넘치고도 남는다. 필요한 말 이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는 나의 본가와는 달리, 처가 형제들은 '저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사소한 일상을 주고받는다. 대화가 많은 만큼 우애도 좋은 편이다. 대체로 아들 많은 집안보다는 딸 많은 집안이 관계가 원만한 건 왜일까?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적어도 가정 내에서는. 가족 간 관계 형성에 여성들이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성장기를 함께 해온 자매들과는 달리, 전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며느리들끼리는..

무엇이든 귀하면 가치가 치솟지만 흔하면 강가의 돌멩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열대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는 한때 일부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것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권 계급'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가. 바나나 먹은 걸 가지고 감동하는 사람도, 어디 가서 자랑하는 사람도 없다. 사진도 그렇다. 오늘날 누구나 하나씩 들고 다니는 휴대폰 덕분에 아무나, 그리고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숫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찍는다. 많이 찍는 만큼 소중함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카메라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 개인이 카메라를 가진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소풍이나 여행을 ..

오늘날 천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된 데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그로부터 2년 뒤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으니 올해(2025년 현재)로 꼭 631년째를 맞이하는 셈이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역사 유적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어느 도시보다 생활환경이나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일찍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으면서도 남산에 올라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을 막 시작한 어린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에서 이끌어 주거나 가르쳐 주는 이가 없다 보니, 학교를 오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본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세월이 흐르면서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