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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늘 나에게 일임하는 터라 내 마음 가는 대로 정하곤 하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걸 내가 대신 알아서 해준다며 도리어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삶 자체를 여행의 일환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어느 한곳을 고집하기보다는 안 가 본 곳을 위주로 하나라도 더 새로운 경험을 쌓고자 하는 편이다. 이번에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삼각지. 바로 인근에는 한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통령실이 있는 곳이자, 오랫동안 미군 부대가 있던 지역이다. 또한 오래전 가수 배호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로 대변되는 곳이기도 하다. 삼각지역에 내리니 그의 팬들이 마련했다는 고인의 모습이 역사 한편에서 오가는..

내가 지금의 블로그를 운영한 지는 꽤 되었다. 2005년에 문을 열었으니까 올해로 20년째를 맞이한다. 단지 햇수만 그렇다는 얘기일 뿐 지금의 형태로 자리를 잡은 지는 불과 몇 년 전이다. 편지 한 장 채우기에도 급급했던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글쓰기에 재미를 느껴 시작하긴 했지만,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향성을 지향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다. 초기에는 어설프게 남들 따라 흉내를 내보기도 했었고, 혼자서만 보는 일기와 만인에게 공개되는 인터넷 글쓰기의 차이점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숱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뒤따랐다. 과거에 썼던 글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니 '이런 내용의 글을 세상이 다 보는 공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외출을 하려고 나서려다 보니 아파트 현관에 웬 광고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이비인후과 오픈'. 최근 동네에 새로이 문을 연 병원 개업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마침내 아파트에까지 병원 광고를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집 바로 앞에도 이미 같은 진료과목의 병원이 두 곳이나 있는 데다, 광고지에 나온 병원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2~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병원이 광고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처럼 병원이 난립된 상태가 아니어서 문만 열어놓고 있으면 환자가 알아서 찾아오는 시대였기에 광고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광고를 한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신규 의사 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생계를 해결하는 방식뿐 아니라, 내 인생의 시간을 잘 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 최인아, 중에서 - ..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는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다 타의가 아닌 자발적 의사에 따라 퇴직한 인물이다. 도처에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퇴직 사유란, 일은 더 이상 그만하고 남은 인생은 맘껏 자유를 향유하며 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막상 2년 정도가 지나고 보니 혼자만의 자유도 균형의 문제란 걸 알게 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그 생활이 좋을지 모르지만, 이내 지치더라는 것이다. 자유란 어느 정도 일이 있는 가운데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