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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나는 먹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집착한다기보다 한 끼를 먹어도 신경을 써서 먹는다는 뜻이다. 흔히 뭘 먹을 때 '한 끼 때운다'는 표현을 종종 하는데 나로선 심히 거부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 .. 때우다니 .. 이는 마치 내키지는 않지만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들린다. 먹는다는 행위에는 허기를 달래기 위한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다른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집밥보다는 외식을 할 경우에 주로 적용된다. 어차피 돈을 내고 먹는 거라면 이왕이면 좀 더 만족도 높은 음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한 끼 때운다'는 표현은 신성한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 근처에 평소 오가다 눈여겨둔 파스타 ..
돌아가신 어머니는 무척 부지런한 분이었다. 세 자매 중 막내딸로 곱게만 자라다가 편모 슬하의 가난한 남편을 만나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자면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주변에 잘 베푸는 분이었다. 가족끼리 마루에 앉아 무언가를 먹다가도 집 앞에 누군가 얼씬거리기라도 하면 '얼른 들어와 같이 먹자'라며 기어이 소리를 쳐서 불러들였다. 친화력 또한 뛰어났다. 시장에 가면 낯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성향을 자식들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다들 부지런하기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희생, 봉사 정신 또한 남다르다. 현대인들은 대개 자기 일이 아니면 나 몰라라 하기 마련인데, 생전에 당신이 그랬듯 궂은일에 자진해서 나설 때가 많다. 누이도, 동생도 .. 내 ..
낙산사를 떠나 도착한 강릉 선교장. 1967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은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과, 근처 경포호를 배다리로 만들어 다닌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에 현존하는 민가 주택 문화재 중 규모에 있어 손꼽히는 곳으로, 건물 중 일부(서별당)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어 1996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강릉시 죽헌동에 자리한 오죽헌. 조선시대 시인이자 화가인 신사임당의 친정이자, 그녀의 아들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은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란 것을 계기로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 전기(15세기 중엽)에 세..
내 연배쯤 되면 손주라는 단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사위나 며느리를 볼 나이가 되었고, 그러면 손주들이 태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본래 손주라는 말은 손자의 비표준어였다. 그러던 것이 2011년 8월 국립국어원에서 손자와는 뜻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표준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손주라는 단어는 손자와 손녀를 동시에 이르는 말이 되었다. 나 또한 굳이 손자나 손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손주라는 표현을 쓸 때가 더 많다. 아이들이 다녀갔다. 애초에는 송년회를 겸해 남매 가족이 다 모이기로 했었는데, 딸이 갑자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아들 가족만 오게 되었다. 돌이 갓 지난 친손주는 갈수록 재롱이 늘어만 간다.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는 녀석의 소소한 변화들을 볼 때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