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년 시절의 추억 (13)
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요즘엔 주변에서 껌을 씹는 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비하면 부쩍 줄어든 것 같기는 한데 그럼에도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 바닥이나 길에 껌 자국이 여전히 많은 걸 보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껌을 씹는 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까지(노년층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풍선껌을 많이 씹었다. 풍선껌은 씹는 재미에 더해 풍선까지 불 수 있었으니 마치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그것처럼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기호품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껌이 민폐로 작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극장이나 버스 안에서 딱딱 소리를 내며 씹는 이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개 젊은 여성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

요즘 도시 초등학교에는 100미터를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거의 없어졌다. 새로 생기는 학교들은 아예 운동장이 없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 만들어졌던 운동장 역시 다목적체육관이라는 건물로 대체되는 일이 흔하다. 먼지 등 대기오염을 이유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옛 정서가 남아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공부, 공부만 앞세우다 보니 또래들끼리 함께 뛰어노는 문화는 학교나 동네 어디에서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같이 부대끼며 땀을 흘리는 가운데 우정도 만들어지고 추억도 쌓이는 법인데 그럴 기회가 없어졌으니.. 앞서 언급한 대로 어릴 때부터 나는 체격도 작고 몸이 약한 아이였다(참고 : 유년 시절의 추억 15편). 성격까지 내성적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밖에서 격렬..

나이가 든 이후론 무료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지만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한창 자랄 때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시골에는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무언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거나 활용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 아이들끼리 심취했던 놀이 중의 하나가 껌종이 따먹기였다. 아마도 당시 껌을 씹는 이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시내 골목길이나 마을 혹은 도랑가에 가면 버려진 껌종이들이 제법 있었다. 날마다 그것들을 줍는 것이 우리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마치 요즘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이 그려진 스티커를 사 모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모은 껌종이는 서로..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유난히 입이 짧았다.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던 육류(대부분 제사나 명절 때나 상에 오르는)는 아예 손길조차 가지 않았고 채소 위주의 음식만 먹었다. 그 까닭인지 얼굴에는 마른 버짐이 자주 피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버짐인지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영양 부족에 따른 피부 질환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먹성이 그러하니 학교에서는 맨 앞자리만을 도맡았고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체격이 왜소하니 자신감은 결여되었고 타인에게 이렇다 할 존재감을 과시할 일도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 잘하거나 말썽을 심하게 피우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주목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데, 나는 그저 '착실하고', 공부만 '조금 하는' 정도의 학생이었던 것이다. 다행..

시골 학교의 최대 축제는 뭐니뭐니 해도 가을 운동회였다. 소풍은 학생들만을 위주로 행해지는 행사인데 반해 가을 운동회는 학생과 가족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운동회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학교에서는 각종 볼거리를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남학생들은 곤봉 돌리기, 여학생들은 마스게임이나 기계체조 등을 선보였다. 가족들을 포함한 외부인들에게까지 보여주는 행사였기에 보다 완성도 있는 연기를 위해서는 반복, 또 반복을 거듭하며 연습에 땀을 흘렸다. 이 외에도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계주, 장애물경기, 과제 달리기, 오자미 던지기, 줄다리기, 기마전 등도 포함되었다. 운동회 당일이 되면 학교 운동장 위에는 원색의 만국기가 펄럭이며 한껏 축제의 들뜬 분위기를 달구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가족들이 자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