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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추억(18) - 달리기 본문
요즘 도시 초등학교에는 100미터를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거의 없어졌다.
새로 생기는 학교들은 아예 운동장이 없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 만들어졌던 운동장 역시 다목적체육관이라는 건물로 대체되는 일이 흔하다.
먼지 등 대기오염을 이유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옛 정서가 남아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공부, 공부만 앞세우다 보니
또래들끼리 함께 뛰어노는 문화는 학교나 동네 어디에서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같이 부대끼며 땀을 흘리는 가운데 우정도 만들어지고
추억도 쌓이는 법인데 그럴 기회가 없어졌으니..
앞서 언급한 대로 어릴 때부터 나는 체격도 작고 몸이 약한 아이였다(참고 : 유년 시절의 추억 15편).
성격까지 내성적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과
밖에서 격렬하게 뛰어놀았던 기억도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5학년 겨울방학 때 발생한 뜻하지 않은 사고(뇌진탕)로
인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더더욱 위축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었다.
가을이면 한 번씩 열리던 초등학교 운동회가 생각난다.
운동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적이 있어 생략하고(참고 : 유년 시절의 추억 12편)
여기에서는 그 당시 열린 달리기 경기만을 언급하려고 한다.
달리기 경기는 애초부터 운동과는 인연이 없었던
내가 학교 운동회에서 유일하게 상을 탈 수 있었던 종목이었다.
1~3등만 상을 받았는데, 1등을 하면 공책 세 권,
2등은 두 권, 3등은 한 권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키도 작고 몸도 약했던 내가 어떻게 상을 받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운동회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받았으니까.
1등은 한 번도 없었고 대부분 3등쯤?
그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6학년 운동회 때였다.
출발선에 서면 오늘 내가 대충 몇 등쯤일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할 수가 있었다.
좌우를 돌아보니 이번에는 아예 기대조차 못 할 것 같았다.
기대는 고사하고 거의 '선수급(選手級)' 아이들로
포진이 되어 나로서는 '죽음의 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은 포기를 한 상태에서 총소리와 동시에 힘차게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짐작했던 대로 얼마 못 가 이내 나는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종목은 같이 달리다가도 일단 뒤로 한번 처지기 시작하면
금세 의욕이 상실되고 더 힘이 빠지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앞서 달리던 '선수급(選手級)'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결승점을 얼마 앞두고 줄줄이 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등장해야 할 교훈이었다.
그날, 나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당당히
3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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