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유년 시절의 추억 (13)
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 당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담임이 바뀌고 반 편성도 다시 하다 보니 매년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유일한 예외가 4학년, 5학년 때였다. 4학년 반이 그대로 5학년으로 올라갔고 담임 선생님만 바뀌었던 것이다. 4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은 시를 쓰는 분이었다.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바로 옆 반 담임을 맡으셨지만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세 명의 아이를 방과 후에 남겨 시 공부를 시키셨다 (담임이 아니었음에도 4학년 때 가르쳤던 우리를 왜 다시 부르셨는지는 모르겠다). 방과 후에 남아 우리가 하는 일은 자유롭게 지은 각자의 습작을 선생님께 보여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몇 개월이 흐르는 동안 선생님은 나의 습작에 관해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또 다른 습작을..

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였다. 아이들은 그 길을 늘 걸어서 다녔다. 하루 몇 차례 마을 앞을 오가는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탈 수가 없었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일지 모르겠다. 한두 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사로 호구지책을 해결해야 하는 가정 형편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땅이 있어 봐야 겨우 한두 마지기 될까, 대부분 자기 땅조차 없어 남의 일을 거들며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집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포장 도로는 사람이나 자전거, 우마차, 자동차 등의 통행으로 인해 지반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그럴 때면 당국에서는 주기적으로 모래와 흙을 보강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동안 인근 주민들은 더없이 불편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기존의 도로..

어릴 적 나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체격도 왜소한 데다 내성적인 성격에 그저 말썽 부리지 않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에 순종만 했던.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당시 생각은 많았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표출할 용기가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키도 부쩍 자랐고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생각들을 하나 둘씩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남을 뒤따라가기보다는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처음 싹을 틔웠던 시점은 군인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한 번 두 번 거듭하다 보니 내성이 쌓이면서 나날이 발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마흔 전후가 되어서야 망설임 없이 나서게 되었으니 다른 이들에 비하면 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