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첫 서울 나들이 본문
내가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서울에 사는 이종 형님이 결혼식을 하게 되어 축하차 참석하시는 아버지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내가 사는 고장에서 서울까지는 곧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 인근에 있는 김천역을 경유해야만 했다.
김천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를 이용했는데 기차를 타본 건 그때가 난생처음이었다.
당시의 쿵쾅거리던 가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김천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녹색의 특급열차였는데
이후에 통일호로 이름이 바뀌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열악한 수준이었지만, 당시로는 이름 그대로 '특급'이었다.
영등포로 들어설 무렵 창밖으로 비치는 휘황한
도시의 불빛을 구경하느라 잠시도 앉아있지를 못했다.
이모님 댁에 도착해서 난생처음 접한 양변기.
재래식 화장실만 보아왔던 '촌놈' 은 처음 양변기를 대하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나 물이 맑던지 그것이 변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용법을 알지 못해 당황스러웠지만,
'촌놈' 소리는 듣기 싫어 누구에게 물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촌 형님을 따라 처음 가 본 남산 어린이회관(현재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는 신기한 것들로 넘쳐났다.
우유란 것도 거기서 처음 맛보았는데 황홀했던 그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유 맛이 변한 건지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요즘 우유에서는 그때의 풍미를 느낄 수가 없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과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면 감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바나나를 처음 맛본 것도 이모님 댁에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히 매력적인 맛은 느낄 수 없었지만,
상류 사회의 상징인 바나나를 먹어봤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때 아버지를 따라 경험했던 내 생애 최초의 서울 나들이는
사회 생활을 하며 난생처음 외국행 비행기를 타던 때의 기분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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