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오랜만에 찾은 공연장 본문

어릴 때부터 나는 가요계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남들은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가수의 시시콜콜한 신상까지 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은 '뭐 그런 것까지 다 외우고 있느냐'며 신기해했지만,
일부러 외우려고 외운 것이 아니라 관심이 있다 보니 한 번만 들으면 쉽게 저장이 되는 편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가요계가 바뀌면서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지자체에서 마련한 신년음악회에 다녀왔다.
같은 음악도 어디에서 듣느냐에 따라 다르고,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또 달라진다.
음악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공연장, 그중에서도 실내 공연장이다.
야외 공연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소리가 흩어지기 때문에 음질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한몫하기에 더러 공연장을
한 번씩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 조항조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감성 트로트의 장인'으로 불린다.
온몸으로 부르는 그의 절창(絶唱)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의 가요계 데뷔는 1978년 '서기 1999년'이라는 밴드를 통해서였다.
흑백텔레비전 시절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던 그의 모습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이끌었던 밴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후 트로트로 장르를 바꿨는데 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20년 가까운 무명 시절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것은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노래였다.
이 곡은 원래 1994년에 선배인 가수 박우철이 같은 제목으로 먼저 발표했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자 한동안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97년에 가사만 일부 바꿔 그가 다시 부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너무나도 좋은 노래인데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비로소 오랜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같은 노래도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 회자되는지도 모른다.
'뿐이고'란 노래로 잘 알려진 박구윤(유명 작곡가 박현진의 아들 - '봉선화 연정',
'신토불이', '있을 때 잘해', '무조건' 등 수많은 히트곡의 저작자)과 소리꾼 민은경, 거기에
수준 높은 권병호 밴드의 연주까지 함께한 2시간 동안의 흥겹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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