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나의 진짜 버킷 리스트 본문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관심도가 높았던 것 중 하나가 가수들이 노래하는 무대였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문명의 이기라고는 라디오가 전부였다.
그것도 행여 다칠까 봐 식구들의 손이 닿지 않는 장롱 위에다 고이 모셔 둘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가을에 학수고대하던 전기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문명의 손길이 시나브로 닿기 시작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인근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장만할 수 있었던 우리집 마당은 저녁이면 작은 극장을 방불케했다.
우리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윗마을, 아랫마을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변웅전이 진행하는 ‘인기가요 20’은 내가 유달리 좋아하는 프로였다.
연말이면 방송되는 ‘10대 가수 가요제’, 1977년부터 시작된 대학가요제가 방송될 때면 완전히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이 노래하는 모습만 보고 있으면 까닭 모르게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얼마나 몰입도가 높았던지 최헌 , 이은하 같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 자리에서 가사와 멜로디를 다 외울 정도였다.
특히 송창식 같은 가수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를 때면 더 흥분이 되곤 했다.
그때부터 나도 막연히 기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몇십 년 동안 막연한 생각으로만 머물던 그 꿈은 마침내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실행으로 옮겨졌다.
그때 역시 갈등은 이어졌다. ‘이 나이에 기타를?’, ‘손가락이 다 굳었는데 될까?’.
행동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 되든 일단 덤벼나 보자.
시작을 하고 나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하나 둘 고비를 넘어서니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다.
악기는 독보讀譜가 기본인데 그것이 안 되니까 코드를 통째로 외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기한 건, 디지털 문화가 등장한 이후 외울 일이 거의 없었던
뇌의 기억세포가 지천명 나이에도 그대로 살아 있음을 직접 확인했다는 점이었다.
그러기를 5년 여. 연습 하나만은 아침 저녁으로 정말 열심히 했다.
악기는 오직 연습만이 결과를 보장할 뿐이었다. 설마 될까 싶었던 것이 노력하니 되었다.
거기에 중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익혔던 하모니카까지 얹으니 김광석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평생 꿈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나의 인생 최대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늦게 시작하다 보니 어려운 코드를 짚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 동안 ‘마음만 송창식’이었던 내가 ‘몸도, 마음도 송창식’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기타를 배우면서 얻은 소중한 교훈 중 하나는,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고는 싶지만 나이를 앞세워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이 있고 거기에 충분한 노력만 수반된다면 못할 것이 없음을 기타 연습 과정을
통해 몸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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