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 본문

내 직업이나 경험과 무관한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흥미롭다.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곧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같은 미용실을 이용하다 보니 통성명까진 하지 읺아도 누군지 절로 알게 된다.
조용히 머리만 내맡기기보다는 이발 도중 미용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많다.
하루 종일 단조로운 일만 반복하다 보니 미용사들은 누군가 말을 걸어주면 퍽이나 좋아한다.
오랫동안 이용하는데도 갈 때마다 어떻게 깎을지를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깔끔하게, 너무 짧지만 않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내 입장에서는 묻지 말고 그냥 알아서 깎아 주면 좋은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더니 손님마다 성향이 각양각색이란다.
어떤 손님은 미용사가 물어보지 않고 깎으면 묻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고,
어떻게 깎을지 물으면 '뭘 그런 걸 묻나. 그냥 알아서 깎아 주면 되지'라고 도리어
무안을 주는 경우도 있어 일단은 모든 손님에게 의사를 물어보게 된단다.
머리를 감고 나서도 세면대에서 바로 나오지 않고 한참 동안이나
거울 앞에 서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개 어딘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거란다.
그럴 땐 미용사에게 곧바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얘기하면 될 텐데,
의외로 남자들이 그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작은 걸 가지고 얘길 하면 혹시 뭐라고 생각할까'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란다.
분위기를 감지하고 미용사가 먼저 알아서 손을 봐 줄 때가 많단다.
그러다 보니 미용사 입장에서는 손님이 세면실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지고, 계산을 마치고 나간 후에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고 했다.
무슨 직업이든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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