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보리밥에 관한 추억 본문
초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이면 우리는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책상 위에 펼치고는 담임 선생님의 검사 과정부터 먼저 거쳐야 했다.
밥에 보리쌀을 제대로 섞었는지를 확인받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쌀이 모자라 정부에서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한번 하얀 쌀밥을 먹어 볼 수 있을까'가 세간의 주요 화두였으며,
그것을 맘껏 먹을 수 있는지 여부가 부富의 가늠자가 되곤 했었다.
내가 사는 마을만 해도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집들이 많았고, 쌀이 없어
학교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출시를 계기로 쌀 부족 문제가 점차 해결되면서
더 이상 혼분식의 강요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리밥은 '없는 사람들이나 먹는' 가난의 대명사였다.
시대가 바뀌어 한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보리밥을 현대인들은
'건강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호화로워진
밥상에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밥이 '건강식'이라면 여태껏 먹었던 쌀과
고기 반찬은 '건강을 해치는 음식'이었다는 말인가.
아동 문학가이신 나의 초등학교 은사님께서 보낸 편지에서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채색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신기하다. 우리 인간은 잘 먹고 잘 살았던 기억보다는 못 먹고 못 살았던
기억을 더 오래도록 곱씹는다. 그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만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지난날의 고생담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으려면 현재의 형편이 과거보다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없어서 마지못해 먹었던 보리밥을 지금도 여전히 주식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거기에서 '건강식'을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리밥을 먹다가 문득 떠오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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