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본문
퇴근을 하고 나니 문 앞에 웬 낯선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택배 상자는 아닌 것 같고 ..
가만히 살펴보니 윗집에서 보내온 듯한 과일 상자였다.
작은 메모 쪽지와 함께…
“그 동안 많이 참아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직접 뵙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아쉽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참았고 무엇을 배려해 주었다는 말이지?"
그러고 보니 전날 우리 라인에 이사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아마도 윗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각박해진 현대 사회...
바로 앞집이나 위 아랫집과도 통 교류가 없으니 누가 이사를 가는지 누가 이사를 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이웃의 '낯선' 인사는 나의 가슴을 잠시 먹먹하게 했다.
윗집은 10여 년 전 바로 위층으로 이사를 왔지만
우리와는 특별히 교류도 없었고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면 그저 가볍게 목례 정도 나누는 사이였다.
맞벌이를 하는 그 젊은 부부에게는 어린 외동아들이 하나 있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그렇듯 시도 때도 없이 쿵쾅거리는 일이 잦았다.
자연히 아랫집인 우리집에까지 소음이 느껴졌다.
오가는 길 가끔씩 만날 때면 그집 아주머니는
"우리 애가 너무 소란을 피워서 죄송해요."라며 미안함을 표시하곤 했다.
우리 역시 조금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어느 집에나 있을 수 있는 아이들 성장과정의 일환이란 생각에
한 번도 그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공동주택에 사는 입장에서 조금씩 서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에게는 그것이 못내 고마웠던 모양이다.
지금껏 30여 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이웃으로부터의 이런 감동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분들의 이름도 메모를 보면서 처음 알았고
연락처도 알지 못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삶 가꾸어 가시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