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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처음 가던 날

자유인。 2023. 2. 19. 07:34

 

 

세상을 살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잠을 자야 할 집이 있어야 하고, 부끄러운 곳을 가려야 할 옷이 필요할 테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만 있으면 그만일까? 이 외에도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 중 하나가 머리를 깎는 일이다.

인도의 수행자처럼 평생 기를 것이 아니라면 정기적으로 손질을 해줘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듯, 머리 손질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그것을 위해 정기적으로 들러야 하는 곳이 이발소나 미용실이다.

 

이발소와 미용실의 차이를 아는가?

이발소는 자르기(커트)나 염색 정도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인 반면,

미용실은 자르기는 물론, 펌을 비롯한 보다 다양한 형태의 머리 손질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발소는 면도가 허용되지만, 미용실은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20년째 집 앞 단골 미용실에 내 머리 손질을 맡기고 있다.

'손질'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깎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깎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

실행에 옮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된다.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를 손질하는 사람 역시 '이용사는 남성', '미용사는 여성'으로 정형화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 당시 살던 동네 이발소에서만 머리를 맡기고 있다가,

아내의 권유에 따라 처음 미용실을 갔던 때가 90년대 초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머리를 다듬고 나왔지만 영 어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발소 머리에만 익숙해 있던 때라 왠지 깎은 것 같지도 않고 누군가 자꾸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미용사의 머리 손질법과 이용사의 손질법은 겉모양부터 달랐다.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이후 다시 이발소로 복귀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남성만을 상대하는 전용 미용실이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손질법은 기존의 미용사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과거 내가 동네 미용실에서 느꼈던 어색함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이발소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요즘 들어 이발소를 찾는 이들은 지난날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장년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미용실이 보다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과 문화는

견고한 고정관념의 틀을 깨려는 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남성 전용 미용실 역시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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