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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의 질문

자유인。 2023. 4. 21. 13:40

 

살면서 아주 가끔씩 나 자신에게 가정법의 질문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때 만약 ~ 했더라면'과 같은.

이런 질문은 대개 미래시제보다는 과거시제일 경우가 많다.

특히나 온 가족의 생명까지 좌우할 상황이었다면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더라도

섬뜩했던 당시의 기분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                       *                       *

내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간 지 10개월 정도가 지난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건 일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던 시절이라, 운전은 나와는 아예 상관이 없는 일로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 선배가 나중에 회사 업무 차량을 운전할 수도 있으니

취득해 두는 게 좋을 거라며 워낙 강경하게 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응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선배 덕분에 일찍 잘한 셈이었다. 그것도 첫 번째 응시에서.

초보자의 특징 중 하나는 능력은 갖춰지지 않았는데 의욕만 앞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연수 과정도 거치지 않았고(그때는 면허시험에 도로 연수 항목이 따로 없었다)

면허만 취득했을 뿐인데, 운전을 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귀하다 보니 운전대를 잡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뒤 충남 당진에서 열리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첨석할 일이 있었다.

마침 신문사에 다니던 친구가 자신의 업무 차량을 빌려주겠노라고 했다.

운전 경력이라고는 전혀 없던 나는 겁도 없이 친구의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아내와,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아들까지 함께 태우고.

운전하는 내내 적잖이 긴장은 했지만 그런대로 순조롭게 잘 내려갔다.

그런데 목적지를 얼마 앞둔 시점이었다.

요즘처럼 도로가 발달이 되지 않은 시절이라 시골 국도에는 곡선 구간이 많았다.

이런 지점에서는 전복의 위험성 때문에 속도를 늦추어야 함에도 경험이 없다 보니 익숙지가 않았다.

결국 직선 주로에서처럼 가속 페달을 밟다가 그만 중앙선을 넘고 말았다.

화들짝 놀라 곧바로 원래 차로로 복귀를 하긴 했지만,

만약 그 순간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라도 있었더라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                       *                       *

또 한 번은 초보 시절이 아닌, 어느 정도 운전 경력이 쌓인 시점의 이야기다.

어느 해 겨울인가 가족을 태우고 전라북도 부안의 내소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목적지를 얼마 앞둔 지점에 사거리 하나가 있었다.

시골길이었고 다니는 차도 많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직진이었고, 사거리를 지나기 전 잠시 멈춰 좌우를 살폈지만

다가오는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진입을 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동차 한 대가 내 차 앞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차와 내 차의 간격은 불과 30센티미터 정도가 되었을까?

하마터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길을 건너자마자 차를 세웠고, 상대방 운전자도 차를 멈추고 내려섰다.

저 멀리서 그가 나를 보며 미안하다는 손짓을 했다.

사실은 나의 잘못이었는지, 그의 잘못이었는지 판단하기도 무척 애매한 상황이었다.

서로가 가슴을 쓸어내리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무사하길 다행이라며

길을 가도 좋다는 손짓을 그에게 보냈다.

                 *                       *                       *

내가 운전을 시작한 이래 가장 아찔했던 두 번의 상황이었다.

각각 2~3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일이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만약 그때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라도 벌어졌더라면,

나도, 가족도 일찌감치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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