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본문

큰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올라오는 길이다.
향년 94세 .. 마침내 서럽고 고단했던 부모님 시대의 막이 내린 것이다.
나의 조부는 큰아들을 낳은 뒤 불의의 사고로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셨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나의 선친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유복자로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적어야 네댓,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자식들이 즐비했던 시대에 형제는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고 고달픈 세월을 견뎌야 했다.
각자의 가정을 꾸린 뒤에도 형제는 한마을에 이웃해 살며, 약속이나 한 듯 슬하에 3남 1녀씩을 두었다.
맨주먹으로 시작한 삶이었지만 각각 경찰 공무원으로, 군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틈틈이 주변의 농토를 하나 둘씩 사 모아 시골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일구었다.
잘 해야 중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농촌 환경에서 하나같이 자식들을
대도시 소재의 대학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는
오직 교육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형제의 남다른 철학 덕분이었다.
다른 이는 다 떠날지언정 나만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착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하늘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은 다가오게 마련이다.
20여 년 전에는 큰아버지가, 10여 년 전에는 어머니가,
7년 전에는 아버지가, 그리고 이번에 큰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하늘 소풍을
떠나시며 치열했던 형제의 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흔히들 인생을 일장춘몽 또는 풀잎에 맺힌 이슬이라 부른다.
그 속의 일원으로 속해 있을 때는 더없이 긴 듯했던 인생이 막상 종착점에 서고 보니
한바탕 꿈을 꾼 듯, 해가 뜨면 일순간에 사라지는 이슬마냥 덧없다는 뜻이리라.
마지막 길을 배웅할 때마다 좀 더 겸손하게 살겠노라고,
용서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또 교만하고 옹졸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은 일장춘몽이요, 풀잎에 맺힌 이슬일 뿐임을 알고는 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