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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2) - 어머니의 자전거 본문
맏아들을 낳고 난 뒤 어머니는 신경통과 관절염에 시달리셨다.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바빠 변변한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병이란 시기를 놓치고 나면 쉽게 나을 것도 영영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당신이 그러셨다. 검증되지도 않은 무허가 민간요법에만 반복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낫기는커녕 평생의 고질병이 되고 말았다.
그 몸으로 그 많은 농사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니 얼마나 버거우셨을까.
무심한 남편이 알아줄까(그 시대 많은 아버지들이 그랬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 핏덩이들이 알까.
그렇게 당신은 홀로 고단하고 서러운 세월을 견디셨다.
내 고향집은 시내(우리는 '읍내'라 불렀다)에서 약 4킬로미터.
걸어갈 수는 있지만 적잖이 불편하다(초등학교 때까지 우리는 그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하루에 겨우 네다섯 번.
한번 놓치고 나면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럴 때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계기가 있었던지 어머니는 예순 중반이
넘어서야 자전거를 배우셨다. 알고 보니 그 즈음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난데없는 자전거 바람이 인 모양이었다.
난생처음 당신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녀오던 날 우리에게 그러셨다.
이제 어디 가는 거 일도 아니라고.
혼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노라고.
뒤늦게 새로운 세상을 접한 당신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자신감으로 들떠 있었다.
매서운 겨울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해 끝자락, 당신은 떠난다는 말도
없이 한 많은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 그로부터 12년. 아직도 고향집 한편에는
당신이 타고 다니시던 자전거가 주인을 잃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녹이 슬고 차체도 낡아 더 이상 탈 수는 없지만, 한때 당신의 발이자
벗이었던 애마를 보고 있노라면 처음 자전거를 배운 뒤 신세계를 만난 듯
더없이 좋아하시던 그녀의 달뜬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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