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의 오늘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 본문
오랜만에 지인의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퇴직을 하던 해 마지막으로 만났으니 실로 몇 년 만이다.
그럼에도 마치 어제 만난 듯 자연스럽다. 어쩌다 두 사람이 만나면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집안 얘기부터 사는 얘기, 심지어 회사 얘기까지 온갖 주제를 망라한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서로 간에 구축된 남다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영어 속담은 적어도 그와 나 사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와 나는 같은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났다. 나는 해외업무를 맡고 있었고, 그는 서비스 담당자였다.
얼마 후 그는 직장을 떠났고, 한동안 또 다른 조직에서 몸을 담고 있다가 그로부터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한껏 기대에 부풀지만,
문을 열자마자 순풍에 돛을 다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남들보다는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걸어온
편이다. 그의 철저한 사전 준비와 노력 덕분이었다.
어느덧 내년이면 그의 회사는 창립 20주년을 맞이한다. 그 사이 회사는 탄탄하게 기반을 잡았고,
해마다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의 남다른 영업력이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서 그와
손을 잡으려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로 어떤 제품에 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첫째가 개발자요, 그다음이 서비스 담당자다.
해당 제품을 반복적으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은 그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나 기술인 출신이 영업으로 성공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왜 그럴까?
어느 기업이든 영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원 부서의 성격이 짙다. 그들이 외부 고객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기회란 그다지 많지 않고, 내부 고객과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이들
부서는 외부 고객과의 관계에서 을이면서 갑인 듯한 입장에 설 때가 많다.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반면 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기에 고객이나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지원 부서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공무원과 기업인의 차이라고 할까. 공무원이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그만이지만,
기업인은 오늘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든 오늘 안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경쟁사로 기회의 공이 넘어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자칫 조직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실함 또는 절박함이 있느냐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인 출신이 영업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은 건 바로 그런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드물게도
그는 그와 같은 고정관념을 깬 흔치 않은 인물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몸에 밴 습성을 떨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아무리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른다 한들 성공적인 변신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주변에서 그의 사례가 무척 드문 까닭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오늘이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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