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내가 사랑하는 맛집 - 경동시장 <안동집> 본문
인간이 사는 동안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있을까? 부득이한 사정으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쩌면 사는 의미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야흐로 음식 천국이다. 너도나도 '내가 만든 음식이 전국 제일'이라거나, '전국 O 대 맛집'이라며 방문객들을 유혹하기 바쁘다. 그럼에도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을 만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흥분시키는 음식은 따로 있다. 바로 배추전이다. 오랜 성장기를 함께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시중에서 배추전을 파는 가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배추전 맛집은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 내에 있는 <안동집>. 이 집을 알게 된 건 2년 전 어느 유명 가수가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였다.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배추전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방송에서 특정 음식을 보고 흥분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세 번을 들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줄을 설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흑백요리사'에 이 집 주인장이 '이모카세'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 집을 찾는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소한 몇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줄 서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로서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다시 들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방법은 있지 않을까 싶어, 어느 날 '안 되면 그냥 돌아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점심시간을 피해 갔더니 거짓말처럼 기다리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았다. 쾌재를 불렀다.
자리에 앉으면 우선 기장밥이 기본으로 나온다. 함께 나오는 생배추를 반찬 삼아 곁들여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소박해 보이지만 손님 입장에서 작은 부분 하나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이것 하나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생배추를 기본 찬으로 내어주는데 같이 나오는 날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 자체로 별미다. 이런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집만의 특징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옛 시골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테이블에 대량으로 놓인 생배추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기본 반찬은 이런 식으로 나온다. 부족할 경우 요구만 하면 언제든지 더 갖다 준다. 양념장은 테이블 앞에 공용으로 있는데, 개인별 작은 접시에 필요한 만큼 덜어먹으면 된다. 손님이 끊임없이 몰려들면 지칠 법도 한데, 주인과 일하는 분들이 하나같이 친절하다는 점도 이 집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국수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맛있다. 언젠가 일하는 분에게서 밀가루만 쓰지 않고 콩가루를 함께 넣어 만들기 때문에 다른 집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내 입맛에는 별도의 양념장을 가미하지 않고도 간이 적당했다.
주문한 음식이 다 차려지면 이런 형태가 된다. 배추전이 먼저 나왔지만, 국수가 나오기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국수의 특성상 기다리는 손님이 많다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넣어 끓이면 쉬이 퍼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큼만 삶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집을 찾는 주 목적인 배추전 또한 적당한 바삭함이 있으면서, 기품 있어 보이는 플레이팅이 한층 더 구미를 자극했다.
이 집에 매력을 느낀 또 다른 요소는 일본 선술집 형태의 테이블이었다. 동경에 갔을 때 이런 모양을 처음 봤는데 일반 사각 테이블에 비해 부담감도 덜하고 왠지 푸근함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좌석을 안 좋아하는 이들은 일반적인 형태의 테이블이 있는 실내 별실을 이용하면 된다.
자리에 앉고 2~30분쯤이나 흘렀을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그 사이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이만큼이나 길어져 있었다. 넷플릭스에 소개된 이후로는 이런 풍경이 일상이라고 한다.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적지 않아서인지 일하는 분들이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아마도 한국어와 중국어가 동시에 가능한 조선족인 듯). 대개 젊은 층은 재래시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방송의 영향 때문인지 꽤 많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신기하게도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린 이번에 다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맛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사진 환경 역시 가장 좋았다.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이 집 주인장은 최근 공중파 방송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네 번을 갔었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여기와는 별도로 창동역 근처에 <즐거운 술상>이라는 영업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맛있다고 요란을 떨어도 스스로 맛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 편인데, <안동집>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진정한 서울 맛집이다.
'서울 음식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동 산책(1) - 칼국수 명가 (12) | 2024.06.21 |
---|---|
영혼을 흔드는 음식 (3) | 2023.11.26 |
용호동낙지 NC신구로점 (0) | 2021.06.21 |
강남교자 강남본점 (0) | 2021.04.20 |
홍어의 진수 - 중랑구 <목포홍탁> (0) | 2021.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