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당신의 재떨이 본문
<선친이 쓰시던 재떨이>
나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는 '옛날 물건 모으기'였다.
수집(Collection)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 나중에는 그 숫자가 제법 되었다.
주로 부모님을 비롯한 선대들이 쓰시던 생활 소품부터 시작했었는데
그때가 아마도 40대 초, 중반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스스로를 인생의 'Slow Starter'라고 부르곤 한다.
어떤 이들은 일찍부터 세상에 눈을 뜨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나는 주로 집과 학교,
집과 직장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남들처럼 경험치가 많지 않았다.
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탈피하기 시작한 것이 40대를 전후한 시기였다.
막혀 있던 사고의 껍질을 깨자 무서울 정도로 개방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옛날 물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어느 날 시골 고향집에 내려갔던 길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부모님은 떠나시는 순간이 있을 테고, 그러고 나면 당신들의 체취가 묻은
물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식 중에 누군가는
챙기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우리집에 보존 가치가 있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조부 때부터 쓰시던 궤였다.
나무 상자 형태로 만들어 그 안에 각종 문서 등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보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집 벽장에서 활용도를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물건이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선친이 1929년생이니까 현재 기준으로 보면
최소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선친의 허락을 받고 그 궤부터 챙겼다.
'알면 보인다'고 했던가. 마침 그때 어느 중앙 일간지에서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란
주제 아래 집안에 오래된 물건이 있으면 제보해 달라는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연락을 했더니 기자가 집으로 찾아왔고, 관련 내용이 우리 가족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이후 선친이 쓰시던 재떨이를 비롯해서 옛날 다리미나 저울,
전화기, 자물통, 등잔, 램프 같은 것들로 숫자는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소품들 위주였지만, 더러는 재봉틀처럼 큰 것도 있었다.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에도 종종 드나들었다.
그것들을 구경하고, 살피고, 손에 넣는 순간순간들이 나로서는 더없는 위안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던가.
최근 들어서는 그 중 의미가 있는 것들만 제외하고 하나 둘 정리를 해 나가는 중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나를 위로해 준 소중한 존재들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떠나야 할 때가 있을 테고, 그러고 나면
이것들은 한낱 쓰레기가 되어 버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의 아이들이 받아주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들도 그들만의 생각이 있을 테니,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것
- 그것 또한 부모로서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