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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의 첫 만남

자유인。 2023. 1. 10. 06:15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월 1일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213만 명을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5,100만 명이니 4퍼센트를 넘어선 숫자이다.

이제 국내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그저 우리네 이웃을 보는 것과 다름없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후진국이었던 한국과 교류를 하는 나라도 드물었을 뿐더러,

어쩌다 외국인이 온다 해도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론티어(New Frontier) 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평화봉사단이란 조직이 있었다.

교육을 비롯한 농업, 보건, 무역, 기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일정 기간(2년) 동안 개발도상국가에 파견해 그 나라의 발전을 돕는 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 나라도 그 대상 국가 중의 하나였다

우리 고장에도 두 명의 평화봉사단원이 파견되었는데

한 명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다른 한 명은 형님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각각 배정이 되었다.

등하굣길이나 학교에서 외국인 선생님을 만날 때면 아이들은 마치 동물원에라도 온 듯

그 뒤를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니곤 했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한국인 영어 선생님의 보조 역할로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내가 2학년에 올라가면서 미국인 선생님은 우리들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년 전체를 통틀어 영어 시간을 반기는 학생은 채 몇 명이 되지 않았다.

다들 영어라는 과목 자체를 '죽을 만큼' 싫어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몇 명' 중에는 나도 포함이 되었다.

워낙 벽촌이라 과외란 것도 없었고 오로지 학교 교육만이 전부였던 시절,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난생처음 접하게 된 영어 시간이 나로서는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매일 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릴 정도였다.

미국인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는 더욱 날개를 달았다.

수업 시간이면 원어민 선생님과 학생들이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연습을 하곤 했었는데,

응대를 하는 학생은 언제나 우리 반에서 나 혼자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 너 ~ 무 ~ 너 ~ 무 ~ 차 ~ ㄹ ~ 해 ~ 요 ~ 콕 ~ 미~ 쿡 ~ 살 ~ 람 ~ 같 ~ 아 ~ 요 ~ "

3학년에 올라가면서 한국인 선생님으로 바뀌었고,

얼마 후 미국인 선생님도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영어 시간이면 어눌한 우리말로 학생들

앞에서 해주시던 선생님의 칭찬은 평생토록 나를 응원해 준 마음의 자양분이었다.

모국어조차 변변찮던 어린 시골 소년이 하면 얼마나 잘 했으랴마는,

그럼에도 아낌없이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평화봉사단 선생님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신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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