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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서울말

자유인。 2023. 1. 11. 06:11

 

오늘 이야기는 말씨에 관한 것이라 우선 나의 출신 배경부터 밝혀야겠다.

나는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상주라는 지방에서 나고 자랐다.

그 지역 말씨는 전반적으로 힘이 없고 끝이 분명하지 않은 특징을 지닌다.

어른이 되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아이 때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더욱이 당시 학교 교육 형태가 교사 혼자 주도하는 일방주입식이라 듣는 수업만 받았지

말하는 훈련은 전무하다시피했던 까닭에 아이들 표현력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서울 문화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를 마치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첫 미팅을 나갔던 때였다. 상대 여학생과 대화를 주고받는데 내 말을 못 알아듣는지 자꾸만 되묻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향말 이외에는 접해본 경험이 없어 나의 발음이나 말씨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서울 사람과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는 서울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일 년 정도가 지나자 어느 정도 흉내를 내는 단계까지는 이르렀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하나 남아 있었는데, 바로 모음인 'ㅡ'와 'ㅓ'의 차이였다.

서울에서는 일상 대화에서 이 두 모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지만,

경상도에서는 문어체로만 존재할 뿐, 구어체 대화에서는 구별 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그 차이도 귀로는 거의 극복이 되었지만, 입으로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이 문제는 오로지 경상도 말씨에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가수 현철이 부른 '사랑의 이름표'란 노래 가사에 보면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란 대목이 있는데,

경상도 출신들은 '이(럼)표(럴) 붙여 내 가(섬)에 확실한 사랑의 도장(얼) 찍어'라고 발음하는 식이었다.

가끔 서울, 수도권에 사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그 부분을 서로 지적하며 놀리기도 한다.

알고 보면 다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본인만은 누구보다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할 때면 서로 어이가 없어 웃곤 한다.

나이가 드니 그나마 배웠던 서울말조차 거의 다 사라지고 다시 고향말로 회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직업적으로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연예인들이야 억지로 배울 필요가 있겠지만,

(그들 역시 평소에는 서울말을 잘 쓰다가도 동향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같은 고향말로 주고받는다)

나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소통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처음 상경했을 때만 해도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서울말을 구분하지 못했었다.

내 귀에는 다 같은 서울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상남북도는 물론, 충청남도와 북도, 전라남도와 북도, 강원남부와 북부, 충청도와 접한 전라도(장항 등),

전라도와 접한 충청도(서천 등), 충청도와 접한 경기도(안성 등) 말씨까지 세세하게 구분할 수준이 되었지만,

내가 쓰는 말씨만은 여전히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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