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가장의 역할을 말하자면 본문
선친은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나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의지할 곳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었다. 치열한 그의 노력 덕분에 시골에서는 '밥 좀 먹는 집'으로 통했고, 자식들 역시 돈 걱정 없는 성장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건 오로지 '내 자식들만은 배 곯리지 않겠다'라는 가장으로서의 투철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떠날 때까지 경제적인 면에서 자식들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 점을 제외하면 가족들이 감수해야 할 다른 부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돌아가신 장인 역시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지만, 선친과 달리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가정 경제를 일으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책임감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배우자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했고, 일부 빈틈은 자식들이 메꿔야 했다.
그것에 관해 당사자는 미안함은커녕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고, 가장으로서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은 외면한 채 인생의 상당 기간을 본인의 취미 활동으로만 일관했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만큼은 더없이 자상하고 좋은 아버지였고, 손주들 또한 그런 할아버지를 '존경한다'라고까지 했다.
선친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투철했지만, 아버지로서의 자상함이 부족했고, 장인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부족했던 반면, 아버지로서는 자상한 편이었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누가 내게 가장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선친과 장인 중 어느 쪽에 보다 높은 점수를 줄 것인지를 묻는다면 단연코 전자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경제라는 바탕 위에서만 피울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가정도 하나의 작은 사회임을 감안한다면, 각자의 구성원이 맡은 바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나갈 때 그 안의 건강함도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떠맡아야 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그만큼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모든 능력을 다 타고 날 수는 없지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나머지 능력도 더불어 갖출 수 있다면 한결 더 빛이 날 수 있지 않을까?
* 위 사진은 생전에 선친이 쓰시던 재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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