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믿음이 가져다준 선물 본문
해마다 이맘때면 남쪽 바다에서 잡아올린 멸치가 집으로 온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을 앞둔 시점이다. 멸치를 보낸 주인공과 나는 일을 통해 처음 만났다. 나라 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던 IMF 시절이었다. 직장 생활을 접고 몇 년째 개인 사업을 하고 있던 그는 제대로 자리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부도 사태까지 겹치니 풍전등화가 따로 없었다. 그때까지 이렇다 할 거래처 하나 없었다.
우연히 나와 인연이 닿았다. 한두 번 문을 두드리고 반응이 없으면 이내 마음을 접는 여느 방문객과 달리 그는 7년을 하루같이 내가 있는 사무실 문을 줄기차게 두드렸다. 그의 남다른 열정과 간절함에 나는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고, 이후 내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전폭적으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기를 20여 년. 그 사이 위태롭던 그의 사업도 기반을 잡았다.
그러기까지 나의 도움이 전부는 아니었음에도, 그는 평생 나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앞이 칠흑 같던 어둠일 때부터 긴 세월을 한결같이 손을 잡아 준 덕분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되었는데 어찌 감히 'O 박사(그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를 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말들은 쉽게 한다. 하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표정을 바꾸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그만은 예외였다. 자신이 한 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사람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의 거래 관계가 막을 내린 뒤에도, 게다가 내가 현직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보다는 한참이나 인생 선배임에도,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황송할 정도로 깍듯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이용할까에만 골몰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의 존재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도 여전히 사업체를 운영 중인 있는 그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를 부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나에게만은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매번 신세만 지는 미안함에 더러 나도 한 번씩 계산을 하겠노라고 나서면 기어이 막아선다. 아직은 현역인 자신이 더 힘이 있노라고.
그는 내가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 또한 그처럼 흔치 않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씩 생각해 본다. 사람은 많아도 정작 마음을 내어줄 상대는 희귀한 현실에서 어쩌면 서로의 믿음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라고. '한결같다'라는 우리말의 살아 있는 의미를 그는 벌써 30년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몸소 내게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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