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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의 파도가 밀려온다고 해서 본문
1980년대 들어 컬러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 있었다. 영화관이었다. 흑백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환경이 도래한 덕분에 집에서도 얼마든지 품질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영화관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실제로 초창기 한때는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급감하면서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시급히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해야 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집보다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되살아나면서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았던 영화 산업은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유선 전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동 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자취를 감춘 것이 여럿 있었다. 손목시계도 그중 하나였다. 나 역시 뒤늦게 휴대폰 대열에 합류하면서 분신처럼 차고 다니던 시계를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휴대폰 하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수 있는데 번거롭게 시계까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매번 휴대폰을 열고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적잖은 불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깨달았다. 휴대폰이 있더라도 시계는 시계대로 또 필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시계를 다시 꺼내어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시계는 비가 오거나 땀을 많이 흘리는 날이면 습기가 차는 문제가 있었다. 얼마간 지나면 자연적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좀 더 괜찮은 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정년퇴직을 하면서 기념 선물로 아내가 시계를 하나 사 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가는 거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습기 문제가 해결된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날 이후 이전 시계는 예비용으로 두고, 외출할 때면 새로 산 시계를 주로 착용하고 있다. 확실히 휴대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는 것보다 편리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신문물의 파도가 밀려오면 이전의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휩쓸리고 말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영화와 시계의 사례를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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