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전설의 퇴장 본문
“ 나는 스타니까 구름 위를 걸어 다녔다.
구름 위를 걷는 스타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도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사느라 애도 먹었다. 이제는 땅에 걸어 다니겠다.
나도 안 해본 것 해보고, 안 먹어본 것 먹어보고, 안 가본 데 가보려 한다.
장 서는 날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는 게 가장 하고 싶다. ”
- 가수 나훈아의 마지막 인사 중에서 -
아무에게나 '전설'이란 말을 남발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 단어는 진정으로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에게 붙여야 예의다. 오늘날 현존하는 연예인이나 예술인 중 그런 대상이 몇이나 될까? 실력도 있어야겠지만, 장기간에 걸쳐 대중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야 하고, 동시에 관련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마침내 그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일 년 전 공식적인 은퇴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그의 작별 공연 '라스트 콘서트 - 고마웠습니다'가 1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의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가요사에서 그처럼 긴 세월 동안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사례도 흔치 않지만,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후 일 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은퇴 공연을 한 경우 또한 아마도 그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의 공연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건 한두 해 전쯤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무대에서였다. 일흔 중반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관객 입장에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그의 공연은 여느 가수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차별화되었다. 본인 말처럼 '입장료 받아서 여기 다 쏟아붓습니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는 훌륭한 가수인 동시에 걸출한 무대 기획자이기도 했다. 자신이 오르는 모든 무대의 기획은 그가 도맡는다고 했다. 공연 후반쯤 객석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무대에 다시 오를 때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 아 ~ 그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체로 스타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스타는 동네 목욕탕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지닌 쪽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는 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신비로워야 한다'라는 부류이다. 그는 후자의 경우였다. 공연이 끝난 뒤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혼자서 할 수 있는 그림을 배웠다는 얘기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한평생 자신의 생각을 견지하자면 그에 걸맞은 실력도 있어야 하고, 고집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신을 흔드는 세상과 쉽게 타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성을 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혼자만의 감옥이 된다. 그 역시 그만의 굳건한 성을 구축했지만, 세상은 그가 만든 성의 내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순전히 그의 남다른 실력과 자신감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우리 가요사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진정한 예술인이자 전설 중의 전설이었다. 그에게만은 전설이라는 칭호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58년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가수로서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온 그에게 팬의 한 사람으로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본인의 말처럼 언제 어느 장터에서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고 있는 그와 우연히 마주칠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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