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창살 없는 감옥 본문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 유학 경험이 있는 경우도, 현지에서 살다 온 이들도 있어, 외국인이 무슨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기겁을 하던 과거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영어뿐만 아니라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현상일 뿐, 전반적인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나의 시대에는 독해 위주의 교육이다 보니 회화를 따로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눈으로만 볼 뿐 입을 떼지 못하는 죽은 영어였던 셈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조차 외국인을 접한 경험이 없어 회화에 관한 한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1학년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 파견 나와 있던 미국인 평화봉사단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수업 참관을 위해 교실 뒷문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난데없는 외국인의 등장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던 한국인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사회에 나와 외국인과 처음 대화를 나눈 건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였다. 어느 날인가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던 선배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더니 느닷없이 수화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나를 찾는 전화도 아니었고, 신입사원의 때도 채 벗지 못한 나에게 그런 전화가 올 리도 만무한데, 영어 울렁증이 심했던 선배가 엉겁결에 나에게 떠민 것이었다.
받아보니 우리 회사를 방문하려는 어느 외국인이 찾아가는 길을 묻는 내용이었다. 어찌어찌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내 동기들이 일제히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민망했다. 나 역시 그때까지 외국인을 상대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 문맥도 맞지 않는 엉터리 영어로 겨우 시늉만 낸 것뿐인데, 그들의 눈에는 마치 대단한 능력자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테어나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한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긴 쉽지 않다. 어휘가 부족하니 하고 싶은 말의 7, 80퍼센트도 채 전달하기 어렵다. 영어를 공부하는 많은 이들이 제발 한국어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어가 유창한 이들도 대부분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 놓이면서 비로소 오늘에 이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외국어를 가장 빠르게 습득하는 길은 그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회화는 부단한 훈련을 통해서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건 전혀 별개의 영역이다. 우리나라가 영어에 관한 투자는 과도할 만큼 많이 하는데도 회화에 있어서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는 까닭은 입시 위주의 교육도 문제지만, 회화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 본들 교실을 벗어나면 막상 활용할 기회가 없다는 데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갓난아기들이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한 끝에 겨우 입을 떼듯이, 외국어 역시 생활 속에서 끊임없는 반복학습을 거듭할 때 발전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네 교육 환경의 대대적인 혁신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인데,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방과 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가 그것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놀기는커녕, 어릴 때부터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리며 창살 없는 감옥에 시달려야 하는 청소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몰랐던 사실 (2) | 2025.03.07 |
---|---|
대전에서 만나는 두부두루치기 (2) | 2025.03.06 |
도랑 치고 가재 잡고 (4) | 2025.03.03 |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임을 (2) | 2025.03.02 |
남아 있으면 무능? (4) | 2025.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