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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으면 무능?

자유인。 2025. 2. 28. 04:43

 

 

급여 생활자들의 공통된 바람은 '언제 이 자리를 벗어나 나만의 사업을 할까'일 것이다. 아무리 연봉이 많고, 복지 여건이 좋더라도, 남의 지시를 받아 가며 남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갈수록 자존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경력을 지닌 어느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느닷없이' 사표를 냈다. 방송국에 있을 때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니 대중들은 그런 아나운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존재감 없는 인물을 어디서 선뜻 불러줄 리는 만무하여, 퇴직 후 한동안은 일이 없어 택배 상하차, 세탁물 수거 등의 궂은일을 하며 입에 겨우 풀칠을 했다고 한다. 온실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여 세상이 대우를 해주는 것 같지만, 들판에 나가 보면 그건 순전히 조직이라는 간판 덕분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한때는 지상파 방송국 아나운서는 우리 사회에서 꽤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진입 장벽도 높았지만,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급여 생활자이면서 연예인에 준하는(수입은 제외하고)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이 구축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대우는 예전 같지 않다. 그에 따라 최근 들어 아나운서들의 독립 선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표를 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건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서 흔들린다.

 

나의 신입사원 시절이 꼭 그랬다. 졸업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숫자가 많아지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다들 능력이 있어 떠나는데(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남을 수밖에 없는가 싶어 괜한 자괴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간다고 해서 다 잘 되는 것도 아니요, 남아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못한 것도 아님을 좀 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영업이나 사업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까? 환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늘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데다, 날마다 같은 일의 반복이기에 현실에 대한 불만은 언제, 어디서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 멀리서 보면 왠지 나만 무능하고 초라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들이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음을 알게 된다. 결국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반복되는 나날의 연속을 어떻게 견디고, 중간중간 삶의 조미료를 어떻게 가미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는 판가름 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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