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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자유인。 2025. 2. 26. 04:26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 필름 카메라 시대에는 사진을 인화하고 나면 뒷면에 촬영 장소와 날짜를 종종 기록하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곳이 어디였는지, 혹은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때가 있어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국내 여러 곳을 다니면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변화가 한 가지 있다. 유명 관광지나 해수욕장 등에 그곳의 이름을 영어나 우리말로 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사진을 찍고 나면 예전처럼 굳이 메모를 하지 않아도 그곳이 어디였는지 금방 식별할 수 있어 좋다.

 

 

동네 지하철역 광장에도 전에 없던 표식이 설치되었다. 같은 장소임에도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 하나만으로 단조롭던 광장 분위기가 한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말은 없지만, 마치 이제 나도 전에 없던 이름표가 생겼다며 뿌듯해하는 듯하다.

 

대체로 우리는 대화법에 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주는 일이다. 사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마찬가지다. 때로는 일의 성패와도 연결될 수가 있다. 호칭은 없이 단순히 본론만을 언급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주면 그만큼 없던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찍이 어느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의 일부)'라고. 그렇듯 사람도, 사물도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도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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