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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이과

자유인。 2025. 2. 18. 03:43

 

전화기를 바꿨다. 내 의지라기보다는 아들과 며느리의 뜻이었다. 전화기에 관한 한 고장이 나지 않으면 끝까지 쓰는 편인데, 난데없이 아이들이 최신형 좋은 제품이 괜찮은 가격에 나왔다며 바꾸라고 권했다. 할 거면 네 어머니 것만 바꾸든지 하고 내 건 그냥 놔두라 했지만, 결국 바꾸게 되었다. 저장 공간에 관해 나는 수시로 정리를 하는 편이어서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데 반해, 아내는 거의 모든 자료를 보관하다 보니 늘 용량 부족에 시달리던 터였다.

 

휴대폰 가게에서 제품을 구입하게 되면 판매자가 알아서 기본적인 세팅을 다 해 주는데, 이번에는 집으로 직접 배달되어 모든 작업을 스스로 해야만 했다. 아이들이라도 옆에 있으면 부탁하면 되지만, 멀리 떨어져 사니 언제 올지 하세월이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수밖에. 우려와는 달리 크게 길을 헤매지 않고 아이들이 일러주는 대로 스마트 스위치를 통해 데이터도 무사히 옮겼고, 개통까지 완료했다.

 

전화기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스마트 스위치라는 놀라운 신기술에 관한 이야기다(이미 익숙한 이들에게는 신기술이랄 것도 없겠지만). 스마트 스위치란 한쪽 전화기에 있는 자료를 다른 전화기로 옮기는 기능을 가진 앱이다. 두 대의 전화기를 동시에 켠 채 와이파이로 연결하면 자동으로 알아서 저장 데이터를 다른 쪽으로 옮겨준다.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면서도 수월한 작업이었다. 모를 때는 한없이 우러러 보이지만, 알고 나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의 세대는 오랫동안 아날로그 시대를 살다가 뒤늦게 디지털 문화를 접하다 보니 디지털 문명에 관해서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반면 MZ 세대는 처음부터 아예 디지털 문화와 함께 성장한 까닭에 거침이 없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하나씩 익혀가면 되니까. 회사 고위직에 오래 있던 이들이 퇴직을 하고 나면 스스로 할 줄 하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본인은 늘 지시만 할 뿐, 직원들이 다 알아서 해주니 무엇 하나 직접 해본 게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떠나고 나면 무엇이든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체질이어서 디지털 문명에 관한 한 그리 밝지가 못하다. 대충 흉내만 낼 따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문과 출신만 있어서도, 이과 출신만 존재해서도 서로 불편함이 따른다. 정신문명에 관해서는 문과 출신이 다소 유리할 수 있겠지만, 물질문명에는 취약하다. 반대로 물질문명에는 이과 출신이 보다 유리할 수 있어도, 정신문명에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도 없어서는 안 될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 또한 그 양쪽의 수레바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시나브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융합 또는 통섭 이론이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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