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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으면 그만일까?

자유인。 2025. 2. 21. 03:43

 

경기도 군포는 나의 신혼 시절 10년을 보낸 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들도 태어났고, 학생의 티를 갓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세상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한 곳이라 들를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다. 당시 주소가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이었는데, 이후 군포라는 별도의 도시로 독립을 했다.

 

살던 아파트 바로 뒤가 산이어서 이른 아침마다 수리산 약수터까지 물을 길으러 가기도 했었다. 그곳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권 5개 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 집 바로 뒤에서 산본 신도시 터 닦기 작업이 시작되는 광경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기도 했었다.

 

 

언제까지나 한 동네에서만 머물 수는 없는 일.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다 넓은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삿짐을 싣고 나오던 날, 아내는 오랫동안 정이 든 이웃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에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옛 동네를 운동 삼아 걸어서 돌아보았다. 새로 들어선 낯선 건물들이 많긴 했지만, 골목 풍경은 그대로였고, 가게 간판들만 바뀌어 있었다. 몇몇 가게는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군포에 가면 오래된 설렁탕 전문점이 있다. 오늘날처럼 골프가 대중화되지 않고 정부 고위 관료나 일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던 시절, 인근에는 VIP들이 자주 드나들던 골프장이 있었다(지금도 운영 중이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대통령을 포함한 일행이 종종 들렀던 곳이라 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한우 양지 설렁탕 전문으로 다른 곳과 달리 토렴식(국물에 밥을 말아서 나오는 형태)이다. 미리 얘기하면 국물과 밥을 따로 내주기도 한다. 음식 하나는 나무랄 데 없이 참 잘한다. 맛에 관한 분석력이 떨어지는 나조차 괜찮다는 평가를 할 정도면.

 

긍정적인 맛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영업하는 가게인데 건물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고풍스럽지도 않고 지극히 평범한 건물이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재단장 정도는 필요해 보인다. 내가 군포에 살던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외관이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적어도 손님이 드나드는 가게라면 어느 정도의 투자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일지언정 차림새가 너무 남루하면 선뜻 다가서기가 망설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또 하나는 일하는 이들의 표정이 너무 무덤덤하다는 점이다. 손님이 오면 반가운 기색은 전혀 없고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하는 얼굴이다. 주인이나 종업원의 표정은 없던 손님을 몰고 오기도 하고, 있던 손님마저 내보내기도 한다. 요식업이란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것이 아닌, 음식을 기반으로 한 종합 서비스업이라는 인식이 함께할 때 생명력도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고 본다. 맛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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